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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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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을 이기는 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입니다
 글쓴이 : 관리자
 


대한민국 초유의 국가적 리더십 위기를 맞아 다시 읽는 참평안 권두언

파멸을 이기는 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입니다

1990년 10·11월 통합호


초목이 봄 여름 초가을만 지나면,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받은 빛으로 오곡백과를 빚어내어, 사람에게 선악을 묻지 않고 귀한 양식이 되어주고 제 속엔 생명의 알갱이를 지녀 스스로 영원케 되는 것은 볼수록 우리 눈에 기이합니다. 생명이 본래 참되고 영원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혼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을 다시 한 번 힘차게 감사하고 찬양하는 시간입니다.


만물은 창조 본연의 조화와 질서 속에 이토록 선하고 아름다운데, 유독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은 제 삶의 길을 잃고 마구 생명을 낭비하여 열매 없는 세계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그 거짓되고 악하고 탐욕스러움이 하늘에 사무쳤고, 살인과 음란의 광기가 천지를 뒤덮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는 신선한 바람 한 점 들이마실 수 없는 혼탁한 인간 현실입니다. 이 혼돈, 공허, 흑암을 깨고 영원한 빛과 질서의 세계로 용솟음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1990년의 가을도 다 저문 한 해의 황혼녘에서서, 우리는 이 한 가지를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므로, 사람의 양심은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없는 이것입니다(로마서 1:20).


사람 사는 자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내가 빚어가는 삶의 실상도 주목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생명을 낭비하고 있어서는 안 될 때입니다.


몇 날 몇 시인지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정한 시간의 끝이 우리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 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인류의 마음은, 황무해질 대로 황무해졌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국지전들이지구촌 가득히 소용돌이치고, 나라마다 집단적인 폭력과 음란과 살인극이 난무하고, 이 나라는 지금 범죄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동서 데탕트의 대조류는 마침내 독일의 통을 이룩하고, 한반도에까지 밀려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 총리와 북한 주석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한 발자국 가까워진 것을 실감하는 마당에서 비로소 목격하게 된 북한의 폐쇄성에 우리는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이 하나같이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의 종합순위가 남한이 3위, 북한이 2위라고 알고 있는가 하면, 백화원초대소의 한 여자 종업원에게 주체사상에 대하여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자 “태양빛은 그늘이 생기지만 어버이 수령님의 햇살에는 그늘진 곳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열올려 강의하는 것을 보면서, 왜 하필이면 이 땅의 북녘 우리 동족이 이룩한 사회가 지구촌에서 가장 폐쇄적인 집단 우상숭배의 암흑 속에 갇혀 있는것일까 하는 물음에 잠기게 됩니다.


‘보안사 민간 사찰’ 사건으로 벌집 쑤셔놓은 듯 해진 우리의 사회 현실은 북한의 폐쇄성에 비하면 얼마나 열린 모습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또 한 번 정치인들의 무력증과 당리당략에 눈 어두운 청맹과니 놀음을 보면서, 보안사 사건이 무슨 정치인이나 군인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양심과 의식이 깊이 병들어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의 표시체라고 생각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물을 줄 모르게 되었고, 양심은 아예 잠재워 놓은 채 맹목적인 삶을 살아가다 보니, 이런 삶의 행태가 표출된 것이 보안사 사건입니다.


가정이나 직장 사회를 들여다보아도, 가치와 권위의 부재 속에 그냥 모여서 먹고 마시고 뛰노는 흐름이 만연하고, 사람들끼리 마음을 주고받고 양심을 밝혀가는 만남은 아예 외면한 채 털끝만한 감정의 끄트머리도 서로 건드리기 싫어하여 완전한 단절 속에 살고들 있습니다.


남이야 죽든지 미치든지 아랑곳하는 이가 없고, 사랑과 공의에서 우러나는 감격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마른 뼈 뒹구는 해골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누가복음 7:31-32) 하고 탄식하신 그대로 사람 마음밭이 창조 본연의 지정의를 다 잃어버리고 무쇠처럼 굳어져 버린 듯 합니다.


공기와 땅, 바다 전체가 무섭게 오염되고, 지구촌 가득히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끊이지 않고, 온 세계가 블록화되어 거대한 경제전쟁, 식량전쟁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보다 천만 배나 두려운 것은 인간의 마음들이 짐승의 마음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 선지자가 세상 끝에 대하여 하나님께 받은 이상 중에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오는”(다니엘 7:2-3)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다니엘 7:17)이라고 했습니다.


세계는 고르바쵸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촌 어디에도 사실상의 평화는 없습니다. 아무리 제도가 개혁되고 체제가 바뀌어도, 인간의 마음 밭이 황무해질 대로 황무해져 있는데 인류사회에 참 평화가 깃들일 수는 없습니다.


인류가 살고 나라가 살고 내 가정과 이웃 그리고 나 자신이 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은, ‘한 사람’ 찾는 운동입니다. 창조 본연의 양심, 하나님께서 선하게 지으신 사람의 본심을, 목숨 바쳐서라도 굳게 지키는 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내 자신 속에 빛이 없어 어둠을 가득 안고 있으면서, 나보다 피상적으로 상대적으로 좀 더 약해보인다고 해서 이웃과 사회, 체제나 제도만을 탓하는 그런 사람들 가지고는, 이 나라와 인류사회를 밝혀갈 수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는”(마태복음 15:14) 법입니다.


사회 제도의 장벽과 체제의 굴레를 핑계 삼아 절대 양심적이고 절대로 선한 사람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남의 허물과 죄를 큰소리로 탓하고 비방하는 것으로 자기의 의(義)를 삼으며, 자기 속에 깊이 도사리고 있는 욕심과 거짓을 포장해 놓은채 나라의 발전을 논하는 사람은 티끌이요 먼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고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며”(시편 33:10), “하나님께서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은”(이사야 40:15)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며”(시편 33:11),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히고”(마태복음 15:13)야 맙니다.


여기 이 한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 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10)


자기의 조국이 바사의 속국이 되어 있고, 악한 무리의 간계로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니엘 6:7) 금령이 세워져, 바사 왕 다리오가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이 선포된 상황 속에서, 다니엘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또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다가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지게 되었을때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7-18)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섭리만을 믿고, 하님의 생명의 법, 성령의 법에 절대 순종하는 한 사람만이 인류사회를 궁극적으로 밝혀 나갈 수 있는 참 활력소입니다. 세상의 법 가지고는 구인(救人), 구국(救國)할 수 없습니다. 인도적이지만 상대적이고, 자연적이나 어둡고, 상식적이나 비양심적이고, 도덕적이나 죄와 사망의 굴레 속에 갇혀 있는 세상의 법을 기준 삼아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생명의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오늘 지구촌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이 나라의 형편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 섭리, 능하신 손을 믿는 절대의 믿음 안에서는 소망만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는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라”(스가랴 14:7)하셨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기”(로마서 5:20)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이사야 1:9)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껴서 살려두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의 씨,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마서 9:29)를 믿는 믿음이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죄악 세상을 이기고 남아 있는 ‘조금’의 정체는 태초의 말씀을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요한복음 1:1-4, 요한일서 5:4).


온 세상이 불에 삼키워지고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이사야 6:13) 하십니다.


거룩한 씨, 예수 그리스도 말씀 안에 있는 영과 생명(요한복음 6:63)을 받아 먹고 마신 우리 자신들이 나라를 살리고, 인류를 영원케 할 생명의 그루터기인 것을 믿고 일어서야 합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요엘 2:12) 하십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요엘 2:13, 예레미야 4:4) 하십니다.


사람은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십니다(로마서 3:4). 우리 국민과 온 인류가 빛 가운데 참사람으로 다시 살아나고,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神)”(스가랴 4:6)으로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받았으니, 믿는 우리의 삶의 열매가 빛이 되어 온 국민이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이것만이 오늘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파멸을 이겨내는 유일한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