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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의 비극
 글쓴이 : 관리자
 
홍봉준 목사 


우리 주변에서 같은 이름 때문에 겪게되는 수많은 해프닝들이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동명이인의 행위가 사회의 공분(公憤)을 사는 흉악 범죄를 저질렀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자못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마도 같은 이름으로 인해 일어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로마 시대 시저의 암살과 관련하여 황망하게 죽임을 당한 시인 ‘신나’(Cinna)가 아닌가싶다. 지난 5월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시저(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신나’(Cinna)와 동명이인의 시인이 성난 시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시저 살해에 가담했던 신나와 이름만 같은 시인(詩人)이 시저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 흥분 상태의 시민들과 마주쳤다. 시민들이 그에게 이름을 묻는다.


신나:내 이름은 신나요.

시민 1:이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자, 시저 살해 공모자 놈이다.

신나:나는 시인 신나요, 시인 신나라고.

시민 4:시도 거지 같으니 찢어 죽이자, 시도 거지 같으니 찢어 죽여.

신나:난 시저 살해 공모자 신나가 아니라니까.

시민 4:상관없어, 이름이 신나잖아!


결국 동명이인 ‘신나’는 무참히 폭행당해 죽는다. 영화를 보노라면 너무나 어이가 없어 이것이 실제 사건인지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상상인지 혼동이 되지만, 불행히도 이 일은 실제 시저의 장례식에서 벌어졌던 일로 역사가들의 기록에 나타난다.

이 사건과 형태는 좀 다르지만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폐해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며, 점점 악성화 되어간다. 인터넷상에서의 악성 댓글과 신상털기, 혹은 근거없는 의혹 제기 등이 그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나 ‘지하철 xx녀’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에 대한 과도한 신상털기와 그로 인한 사생활 노출, 그리고 그와 이름이 같은 자들이 받는 애먼 피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심한 경우는 피해자들의 자살 등 극단적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중앙일보 문소영 부장은 지난 5월 26일자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주목할 것은 공격 대상이 된 애먼 사람들이 “나는 당사자가 아니다”, “동명이인일 뿐이다”고 아무리 증거를 들어 조리있게 해명해도 “잡아떼지 말라”며 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최근 한국 교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30여 년 간 ‘전도관 통일교 출신’이란 꼬리표를 달고 이단의 굴레를 짊어졌던 박윤식 목사님께서 사실은 동명이인의 이력을 뒤집어 쓴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세이연과 진용식 목사 등이 박윤식 목사님의 ‘통일교 전력’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증거사진(<사보>, 1990년 12월호)에 의하면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는 현재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단문제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당사자의 얼굴도 분간하지 못하고, 아니면 대조하는 성의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애먼 사람을 ‘통일교 출신 이단’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실이 자신들이 제시한 사진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발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상의 나이가 당시 29세와 차이가 난다느니, 얼굴 감정을 통신과 교수가 아니라 사진 몽타쥬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한다는 등 책임회피성 발언만 일삼으면서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강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니라면 ‘아닌 사실을 입증하라!’며 도리어 입증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보여주고 있다.


문소영 부장은 억울하게 동명이인으로 몰려 죽은 시인 ‘신나’ 사건을 언급하며 의미심장한 말로 끝맺음을 하였다.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게 진실이었고, 그들이 믿고 싶은 것은 “이 신나가 때려 죽여도 좋은 그 신나”라는 것이었다. 동서고금 인류에게는 이런 비틀리고 광적인 군중 심리가 있다. 기억할 것은 현대의 인터넷과 SNS 세상에서 우리 모두 시인을 때려 죽인 로마시민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맞아 죽는 시인도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 지금 한국 교계는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행동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비틀리고 광적인 군중심리’가 만연해 있다. 세이연과 몇몇 이단감별사들뿐 아니라 이들의 근거없는 주장에 동조하고, 광적인 군중심리로 당사자를 비난했던 수많은 군중들도 역시 가해자다. 한국 교회가 참다운 신앙을 회복하고 사회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비이성적인 군중심리와 단절해야 한다. 그런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몰상식을 몰아내고 건전한 상식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이단이 쇠퇴하고 정통이 권위를 회복하게 된다.


 
   
 




 
 
기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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