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ㅣ SITEMAPㅣCONTACT US
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HOME > 만남의광장  
 
   
4.11 총선 취재일기
 글쓴이 : 관리자
 

‘마땅히에 관한 일’, ‘되어질 일’

늘 이맘때면 많은 질문을 받게된다. 묻는 일이 직업인지라 익숙치도 않은데, 특별히 곤혹스럽게 하는 물음들이 있다. 당위(當爲)에 관한 것들이다. “이런 자가 공천을 받고, 당선되는 게 말이 되느냐.” “어찌 이런 당이 이렇게 많은 의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식의 질문이다. 이럴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논쟁으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마땅히’에 대한 생각은 부모자식간, 형제간에도 다르기 쉽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대답해왔다. “‘마땅히에 관한 일’보다는 ‘되어질 일’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실제로 그래 왔다. ‘당위’에 관한 일들은 저마다 관심도 많고, 주장도 넘쳐나는 세상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라는 요즈음은 더욱 그렇다. 저마다 옳다 보니, 당위에 관한 것으로는 특화가 쉽지 않다. 직업적으로 보아도, 여기에 힘을 다해야 할 이유가 많지 않다. ‘되어질 일’은 미래의 일이다.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다. 주장의 공간도 아니다. 자연스레 ‘섭리(攝理)’로 눈이 간다. ‘어떤 이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의미의 일을, 어떻게 하게 될 것인가.’를 살피기 위해, 일의 과정을 뜯어보는 일이 직업적으로도 좀더 유의미해 보인다.

게다가 ‘마땅히’는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저마다의 마땅히‘가 ‘자기 선(善)’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이 독선(獨善)이 아닌가 한다. 요즘은 종종 ‘정의(正義)’로도 불리는데, 당위가 저마다이다 보니, 정의 역시 그렇게 되는 일이 흔하다. 어떤 이들은 이 정의를 조물주에게까지 적용한다.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은 마땅히 이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홀로 선한’ 존재(마가복음 10:18)를 자기 선으로 재단하는 일, 주변에 흔하다. 믿는 이들 가운데도 적지 않다.

경험으로 보건대, 정치는 이 당위(또는 정의)를 부추긴다. 그리고 그 당위를 먹고 자란다. 특정 당위에 대한 동조자를 많이 얻을 수록 세(勢)가 확장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이맘때면 저마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당위, 또는 정의가 꿈틀댄다. 정치가 그것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때론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도 이 정의가 되살아나곤 한다. ‘신앙에의 확신’은, 이 정의에 근거없는 자신감을 더하기도 한다.



다만 믿는 자가 당위를 확신하기 전에 떠올릴 장면이 하나 있다면, 유대 민족의 ‘바벨론 유수(幽囚)’ 사건이 아닌가 한다. 이민족의 침입에 ‘결사항전’도 모자랄 판에 하나님의 계시는,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라. 그러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때려잡아도 시원찮을 민족의 철천지 원수 느부갓네살왕은 ‘하나님의 종’(예레미야 25:9)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리고 이 일들을 받아들일 근거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입일 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와는 정반대의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유통시키는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당시 유대 땅의 많은 믿는 이들이 정의와 당위에 큰 혼동을 겪었으리라. ‘2년내에 물리쳐 이길 수 있다고 하셨다.’(예레미야 28:11)고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의 선동은, 더 많은 공감을 샀다. 그래서 민족의 비극은 더 컸다.

분명 선거의 해다. 당위론과 정의가 쏟아지는 소리가 끊임없다. ‘무상급식, 부자감세, 4대강 개발,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야권연대, 색깔론, 민간인 사찰…’ 연말까지 그 수(數)가 더해지며 소리도 더 높아질 터이다. 정의가 자극받고 있는가. 내 손으로 누군가를, 어떤 집단을 심판해야만 할 당위를 느끼는가. 그렇다면, 먼저 바라볼 ‘하나님의 사람’의 입을 가졌는지, 그 입에서 나온 말씀을 들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나아가 나의 ‘마땅히’가 거꾸로 뒤집히는 상황도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먼저 ‘역사의 주재자’의 ‘섭리’를 주목해 볼 일이다. 당위의 홍수에 침수되지 않을 뿐더러, 출렁이지도 않을 길이 이것이리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보았으면, 기도하지 않고 견딜 수 없다.” “기록에서 ‘시대’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을 비로소 알게 되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않나.


 
   
 




 
 
기자 요한

게이트(Gate)

"Stand Still"

되돌릴 수 없는 혁신

세월호와 대한민국호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주후 2013년 12월 …

동명이인의 비극

아침의 나라에서 부를 노래

‘양치기 소년’과 ‘종말론(終末論)…

이제는 시대를 조각할 때입니다

생각의 신을 벗으며

요셉과 수령론(首領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