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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의 나의 고독
 글쓴이 : 관리자
 


환난 중의 나의 고독

왕상 19:1-14


고독은 이 땅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입니다. 어떠한 심한 공포도 함께 있다면 견딜 수 있지만, 고독은 마치 죽음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적인 고독은, 십자가적인 고독은 결코 무서운 고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영의 풍요를 맛보는 신비의 도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환난 날의 고독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가 만난 환난 날의 고독에서 성도 수용(收容)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말씀 운동의 승산(勝算)이 양보다 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독은 깊은 영적 은혜의 지경에 들어가게 하는 축복을 가져옵니다.


고독은 깊은 영적 은혜의 지경에 들어가는 축복을 가지고 옵니다. 그 은혜의 지경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의 경지입니다. 모두가 나를 떠나도 오직 떠나지 않는 한 분이 바로 만군의 주 여호와,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지금 이러한 경지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는 승리 후에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고 추격하여 위급한 상태에 놓여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쓰러지고 말았을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에게 떡과 물을 먹여 주시고 말씀으로 위로 하셔서 사명 의식을 각성하게 하셨습니다. 반가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도의 신앙 자세입니다. 다윗도 홀로 고독의 심연에 남아 하나님만 의지하는 재미를 보았습니다. 시편 62:1에서는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오직 하나님만을 구원자로 믿는 믿음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결국 정욕적이고 마귀적입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것들은 그저 쉬 지나가고 마는 것들입니다(요일 2:15-17). 결국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고독 속에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영적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나만 홀로 남았다’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그의 애절한 신앙의 고백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고독은 깊은 회개에 잠기게 해줍니다.


고독을 만나 보았습니까?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송아지의 각을 쪼개었습니다. 이것은 제물이 되는 순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요나를 보십시오. 결국 다시스 바다까지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 붙잡히고 말았고,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 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말했습니다(욘 1:12).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홀로 남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요나 역시 물속에서라도 홀로 있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별수 없이 하나님께 잡히고 마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바다에 던짐이 되는 그 순간이 곧 홀로 되는 순간이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임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때 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회개가 아니었겠습니까?


예수 십자가 좌우편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외쳤습니다(눅 23:39).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지금 그에게는 세상도, 친구도, 명예도, 물욕도 다 저버리고 제 갈곳으로 떠나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를 십자가에 던지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세상에 배신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그에게는 자기 죄와 그 결과로 받는 육신의 형벌과 지옥의 불못밖에 없지 않습니까? 실로 그는 고독하고 홀로 십자가 위에 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의 의를 쳐다보고 구원을 요청하는 회개가 던져졌습니다. 자기는 죄에 대해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주님께는 죄가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눅 23:41). 그리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눅 23:42). 하나님은 범죄자를 홀로 남기십니다. 이렇게 고독할 때 회개가 던져집니다. 범죄자가 만나는 마지막 기회가 고독입니다. 고독에서 회개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고독은 깊은 기도를 가져오게 합니다.


고독은 깊은 기도를 가져옵니다. 엘리야는 그 시대의 죄악과 아합의 죄악을 고발하였습니다(왕상 19:10).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리고 단을 헐며 선지자를 죽였고, 이제 엘리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엘리야에게 깊은 기도가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독은 마치 죽음보다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창세기 32:24 말씀 볼 때에, 야곱은 얍복 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홀로 남은 지경에서 단독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깊은 기도가 되었는지, ‘날이 새도록’ 밤새 기도하였습니다(창 32:24). 야곱의 씨름은 전쟁입니다. 생사를 걸고 올리는 기도입니다. 옛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는 지경까지 갔을 때(창 32:25), 결국 그는 고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모세 역시 호렙산에서 40주야 홀로 기도하였습니다(출 24:18). 이렇게 홀로 남는 고독은 깊은 기도, 은총에 잠기는 기도, 불을 토하는 기도, 중심을 쪼개는 기도를 가져오게 합니다.


고독은 하나님 은총의 위로를 체험하게 해줍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을 찾아가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한 뒤 홀로 남게 되자, 성도들의 보호와 사랑의 교제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그 골짜기의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을 명하여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하게 하셨습니다(왕상 17:2-6).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3년 6개월을 통과하는 부요의 은총을 주셨습니다(왕상 17:10-16). 참으로 주님을 위해 홀로 남았을 때 풍요와 은총을 받게 됩니다.


갈멜산 대전의 승리 후에도 엘리야 선지자는 고전을 겪었습니다. 이세벨의 끈덕진 도전 앞에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 기진맥진 할 때에도 엘리야는 은총의 재미를 겪었습니다. 천사가 엘리야를 두 번이나 어루만졌습니다(왕상 19:5). 쉽게 말하면 천사가 안마해 준 것입니다. 천사가 주는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마셨습니다(왕상 19:4-5). 그리고 천사의 격려를 받고 힘을 얻어 40주 40야를 행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산 호렙에까지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왕상 19:6-8).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방문을 받고 새로운 사명의 길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왕상 19:9-21).


우리는 홀로 남았을 때 실패의 순간인 줄 압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은혜는 홀로 남는 고독 가운데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장 만족하는 은혜는 외로운 지경에서 몸부림칠 때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홀로 남겨졌을 때 신기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는 환난 날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우수(憂愁)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참 신앙의 생명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위대한 엘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중심의 각을 쪼개어 불의 응답을 보는 회개의 재미를 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만 쏟는 깊은 기도의 체험, 은총을 체험하는 풍요가 모두 고독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성도가 홀로 남는 지경에 들어갈 때만이 하나님의 진상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독은 인간 본연의 자세를 정립시키는 축복입니다. 고독은 인류를 개인화(個人化)시키는 진리입니다. 사람이 홀로 남을 때 삶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게 됩니다. 본문 10절에서 엘리야는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홀로 남은 줄 알았을 때 자기가 죽는 지경임을 깨닫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시편 57:7의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라는 고백은 죽기로 작정한 가운데 나오는 편안하고 안심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내세를 믿는 마음이요, 새 집에 이사 가는 마음입니다. 생명의 맛이 나고 영혼의 풍년가를 부르게 됩니다. 사람이 홀로 남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줄 알게 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지금 단독자(單獨者)로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적신(赤身) 상태였습니다. 그는 완전히 홀로 남아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적신이 그리로 돌아갈지라’ 고백하였습니다(욥 1:21). 적신이란, 개인화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원 운동을 시행하시면서 먼저 적신화 운동, 즉 홀로 남기는 운동을 먼저 하십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각자 나 하나를 상대하시기 위해서 홀로 남기십니다. ‘개인화’는 결코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개인주의는 하나님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이기주의적 암초입니다. 그러나 ‘개인화’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단독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과 나의 만남은 항상 적신 관계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이라는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떼어놓는 작업을 하십니다(창 12:1-2). 야고보와 요한도 부모와 친척, 동료와 업(業)을 떠나게 하셨으며(막 1:19-20),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떨어트리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출 3:1-12). 사도 바울을 세상 문벌과 학문에서 떼어놓으셨습니다(빌 3:5-8).


그렇다면 떼어놓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름을 불러주시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름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 부르시고(창 15:1),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십니다(삼상 3:10). ‘마르다야’(눅 10:41), ‘마리아야’(요 20:6), ‘사울아 사울아’(행 9:4), ‘삭개오야’(눅 19:5) 부르십니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부르시는 소리요(사 40:26, 43:1), 자기 백성을 알고 부르는 사랑의 소리입니다(마 1:21, 요 13:1, 눅 19:10). 구원의 소리입니다(행 16:31).


사경에 빠진 인간에게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하시는 일은 실로 살아나는 순간이요, 축복의 순간입니다.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순간입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고요한 호렙 산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 그 소리에 엘리야의 전 인격에 큰 충격이 일어나고 새로운 감격의 마찰이 생겨납니다. 그 지경에 들어갈 때 아합도, 이세벨도, 세상과 염려와 죽음도 간 곳이 없어집니다. 그 순간이 바로 세상 덩어리에서 떨어져 하나님께만 붙어 살아나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개인화’는 곧 주님께 붙는 운동입니다. 세상을 떠나 주님에게 붙어 본래의 사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홀로 남는 이 운동이 종교개혁의 운동을 가지고 왔습니다. 마틴 루터는 중세기 덩어리에서 홀로 남은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때 그는 그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장로교 마틴 루터의 창설자 존 칼빈의 고독이 바로 이것입니다.


절망에는 고독에 이르는 우수(憂愁)의 고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독은 사람이 만든 고독이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참 고독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존 칼빈 위대한 창조의 고독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엘리야의 고독입니다. 이 고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독이요, 나사렛 소년 예수, 예루살렘 청년 예수가 걸어간 고독의 길입니다. 이 고독 속에 우주보다 더 큰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심령의 세계가 어찌나 가물어 메말랐는지, 옛날 이스라엘 천지에 3년 6개월 가뭄이 들었던 것보다 더욱 혹독합니다. 초비상성(超非常性)을 띤 환난의 징조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교회들이 언약을 어기고 20세기 황금 바알, 지식 바알, 과학 바알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도 고독합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어디까지나 육신인지라 괴로움이 닥쳐옵니다. 이렇게 밤을 지새워가며 기도를 합니다. 엘리야적 고독을 지닌 자가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져도, 여러분이 산산이 흩어져 살아도, 신앙 생명의 질적 우수성을 가지고 깊은 영적 은혜 속에 헤엄치면서 분연히 인간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는 이 개혁주의 운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튼튼히 붙잡고 사명을 완수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1983년 1월 1일 신년예배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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