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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린 인간 부스러기 (고장 난 인간)
 글쓴이 : 관리자
 

내버린 인간 부스러기 (고장 난 인간)

요 9:1-11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얄궂은 운명으로 태어난 자신을 저주하며 살았습니다. 이 사람을 본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하는 고난이 그 부모나 자신의 죄의 결과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요 9:1-3). 예수님은 이 소경을 운명적인 존재로 단정하지 않으시고,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셨으며, 미래에 이뤄질 창조적이고 궁극적인 삶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마 9:27-31).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불행한 운명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창조의 가치를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불행이 자기 앞에 휘몰아치면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행이 몰아닥친 생을 저주하고 그 불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삽니다. 그러나 역사에는 고난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을 느끼며 성공적인 인생으로 바꾸어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가혹한 운명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칠지라도 그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면 안 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불행한 자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마 4:23-25, 마 9:35). 운명에 맡겨 살도록 하지 않으시고, 그 운명을 바꿔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인생고의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를 따를 때 비로소 해결됩니다(마 11:28-29, 마 14:14-21, 고후 8:9).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방법과는 다른 차원에서 저들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부모를 잃은 자는 부모를 잃은 대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소경된 대로 그 환경과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삶의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존재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안 된다고 포기합니까? 왜 믿지 못하고, 낙심하고, 낙담하고, 주저앉아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 말씀은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 말씀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할 일이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아의식에 대한 상반된 두 가치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비교의식’이요, 하나는 ‘창조의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외모, 재능, 환경, 직업을 보며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비교합니다. 이런 ‘비교 의식’을 통하여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에 빠지고, 불만스런 현실에서 방황하고 원망하며 생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은 ‘창조의식’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유사한 다른 존재는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자기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믿음으로 굳세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게 ‘창조의식’을 일깨워주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인간의 살았다고 하는 자각(自覺)은 여기서부터 출발하며 그때 비로소 사명을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첫 번째 여성 목사인 양정신 목사는 일곱 살에 소경이 되어 아무 쓸모없는 아이라는 멸시를 받고 자랐습니다. 아이가 “하나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쓸모없다 말합니다. 이 쓸모 없는 것이 살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를 포기하세요. 나는 보지 못하는 소경입니다.” 하고 기도할 때, 어린 소녀의 마음에 이런 응답이 왔습니다. “너는 눈이 안보여 네 눈이 쓸데없다고 하지만, 네 몸에 남아 있는 것들을 헤아려 보아라. 못 쓸 것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쓸 수 있지 않느냐?” 그녀는 비로소 삶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쓸 수 없다고 내버린 인간 부스러기, 고장 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앞 못 보는 소녀를 들어서 깜짝 놀랄 일을 하셨습니다(요 9:3, 사 42:9, 사 43:18-19, 고후 5:17, 계 21:5). 소경이었던 양정신 여사는 대학교 강사, 교회의 목사, 글을 쓰는 문인으로서 엄청난 운명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인간이 참으로 행복을 느끼며 감격스러운 일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주의 집에서 주를 위해서 일할 때입니다(롬 14:7-8). 세상의 백 날 천 날보다 주님의 집의 한 날이 얼마나 귀합니까?(시 84:10)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생의 의미를 찾을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할 일을 찾는 백성은 복된 백성입니다. 할 일을 찾는 교회는 산 교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철두철미하게 각성하고 뉘우치고 회개해야만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지 오직 주님을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빌 3:13-14, 행 2:37, 16:30). 사도 바울이 실망과 불행을 모르고 일생을 살아간 것은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받고 깨달아 그의 할 일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는 일에 충성했습니다(빌 2:21).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운명을 바꿔 주십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내게 주어진 운명을 운명으로 알고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큰 축복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를 잃지 않는 사람은 삶의 놀라운 축복을 가져오고 맙니다(시 50:23). 반면에 자기의 현실을 원망하는 사람은 삶 전체를 저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감사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감사가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살전 5:18). 날마다 감사 생활을 하면 자녀와 남편과 아내, 모든 사업과 가정, 교회마다 축복을 가져옵니다. 감사를 드리되 삶 전체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좋으신 분’으로 신뢰하고, 언제나 결과를 좋게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감사해야만 되겠습니다(롬 8:28).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고통과 절망이 변하여 기쁨과 축복을 가져온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행 16:19-26).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남부군의 한 어린 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일을 하기 위하여 건강을 요구하였더니, 도리어 몸에 병을 주어 더욱더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노라. 부자가 되어 행복하기를 원했으나 가난한 자가 됨으로 오히려 믿음으로 부요하게 살게 되었노라. 한 번 세도를 부려 만인의 찬사를 받기 원했으나 세력이 없는 자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노라. 삶을 즐기기 위해 온갖 좋은 것을 다 바랐지만 하나님은 내게 생명을 주사 온갖 것을 다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하나도 받지 못하였지만 모르는 사이에 나는 희망찬 것을 다 얻었나니,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간구하지 않던 더 좋은 것으로 다 채워 주시고 응답해 주셨다.”


어떠한 고난이 우리에게 임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붙잡으며, 하나님의 뜻과 함께 일해야 됩니다

인간이 참으로 자신을 알고 사랑하며 자신을 용납하고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믿음으로, 말씀으로 만나야 됩니다. 오늘날까지 신앙생활 하고 교회생활 한다고 하면서 신구약 성경,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매일 봉독했습니까? 성경을 읽지 않고서야 어찌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 안에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봐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하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엡 2:10, 딛 2:14).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입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이 신기하고 놀라운 작품인 나 자신을 믿음으로 발견할 때 비로소 삶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빌 3:9).


어떤 고난도 불행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알면 자기 안에서 창조의 현상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질병의 가시가 있었고 그 고통이 제거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 가시가 바울의 몸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바울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고후 12:7-9).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바울은 그 고통을 지니고 사는 것으로 날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송했습니다. 날마다 쉬지 않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내게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를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뜻을 찾으면 더욱더욱 의미가 있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인생의 수없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면서 선한 일을 이룩했습니다(마 7:13-14). 우리는 우리에게 고난이 임할 때, 곧 회개하는 기회를 찾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회개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못 갑니다. 인간은 고난이 임할 때 회개하는 심령의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눅 15:12-32).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 119:67, 71, 75).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축복입니다(렘 31:18, 히 12:5-11).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어떤 불행과 환경도 능히 승리로 바꿀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창세기 37-50장 말씀을 볼 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넣어 죽이려다가 종으로 팔아 넘겼지만 요셉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간곡한 말로 형들을 위로했습니다(창 50:14-15, 20-21).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의 살아 계신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불행에 울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도움의 손길을 펴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과 고통, 괴로움이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임을 깨닫고 고백했습니다(고후 1:8-9).


고난을 통하여 위대한 생을 창조한 사람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이마 위에 주름살이 깊을 때, 마음속에 심오한 지혜가 생깁니다. 살을 찔리고 뚫는 상처가 있을 때, 영혼으로 솟아오르는 향기가 진동합니다. 향기가 깊습니다. 생명의 깊은 뜻은 피로 쓰는 글과 눈물로 그리는 그림으로만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남긴 신약 성경 13편의 서신, 만고에 길이 남을 불멸의 저서는 춥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환난 당하고 어두운 감방 속에서 창작된 말씀입니다(고후 12:22-23). 위대한 사상과 신앙과 인격은 다 고난의 산물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무사안일(無事安逸)하기보다는 수없는 시련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보다 가치 있게 창조하시는 것이 더 큰 보람이 있고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할지라도 그 환난이 친구가 되고, 그 환난은 우리 인생을 유익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믿음이 고난을 이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고의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불행한 환경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실패와 불행한 환경과 가혹한 시련을 ‘도피주의자(逃避主義者)’의 방법으로 응하지 말고, ‘정중하게 직면(直面)’하여 이 ‘가시’를 ‘승리의 면류관’으로 바꾸어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의 보람과 승리의 벅찬 감격을 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고전 15:10).


2000년 10월 8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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