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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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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글쓴이 : 관리자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시편 39:4-7, 디모데전서 6:7-10, 17-19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볼 때, 하나님은 영원하시기에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도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두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처럼 사람도 인격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천하보다 귀한 것이 사람이요(시 49:20),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셨는데 그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나무의 열매 외에는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나라입니까. 공포나 두려움, 걱정, 근심이 없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우리를 상치 못하고 일기(日氣)에 변화가 없는 세계이니 얼마나 좋습니까(계 7장). 그러나 죄를 지은 후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생기고, 남자는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수고해야만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돈이 전부가 아닌데 타락한 세상은 돈이 전부가 된 것입니다.


정(定)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돈’은 국어사전을 볼 때 “물건을 사고 팔 때 그 값으로 주고받거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주고받거나 하는 일정한 가치를 나타내도록 모양을 규격화한 물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딤전 6:10). 헬라어 원어를 볼 때,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할 텐데 돈이 주인이 됩니다. 돈만 있으면 권력과 명예가 따르고 대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부자’라고 하지 않고 “부하려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딤전 6:9). 밤잠을 자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인격도 없고 손발이나 마음도 없는 돈 자체가 악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한다 함은 돈을 자기 삶의 최후 목표, 행복의 기초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물건 사둬. 다음에 돈이 될 거야. 자네 늘그막에 고생하지 않고 편안히 살 수가 있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삶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6:9에서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하자 예수님은 호되게 그를 책망하시며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라고 하셨습니다(눅 12:13-15).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삼아야지 재물의 넉넉함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돈한테 미혹을 받아 끌려가다가 망신을 당하게 되고 가산이 파탄되며 가족들과도 뿔뿔이 흩어지는 것입니다. 또 “믿어봤자 라면 하나 못 사먹고 좋은 것을 살 수도 없지만, 돈만 있으면 다 살 수 있으니 돈이 최고”라고 하며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돈을 부릴 줄 알아야 할 텐데 돈을 주인같이, 상전같이 모시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물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하고 돈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은 그 말로에 영생을 취하지 못합니다(눅 12:16-21). 그러니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딤전 6:17).


많은 부자들은 풍성한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진심으로 즐기지 못합니다. 잘못될까 봐 늘 돈 때문에 노심초사 합니다. 자식을 길러도 돈으로 기른 자식들이 뭐가 되겠습니까? 수전노(守錢奴)요, 영생도, 하늘의 소망도, 하나님도 없습니다. 왜 그러한 농사를 짓습니까. 내 아들딸은 부모보다도 더욱 훌륭한 신앙 인격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다가 천군천사가 부러워할 정도로 그 손에 받들려서, 영원한 보좌 하나님 앞에 있는 천천만만의 천사가 흠모하고 부러워하는 자식으로 양육해야 할 것 아닙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부하려 하는 데 쫓아다니다가 입술이 타고 간이 타고 손발이 다 못 쓰게 되고 마지막에 돈한테 종노릇하면 그것이 무슨 망신입니까. 돈은 돌게 되어 있는데 붙잡고 있으면 큰일 납니다. 헬라 원어로 ‘관리자(청지기)’는 ‘오이코노모스’라고 합니다. 관리자, 곧 돈을 맡은 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뜻에 써야 될 텐데 기뻐하시지 않는 것에 쓰면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것은 모든 악의 시조와 근원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해야 할 선지자 발람이 뇌물을 받고 저주하러 가자 발람을 치기 위해 칼을 빼어 든 천사를 본 나귀는 사람의 말을 해서 “선지자의 (돈에) 미친 것을 금지”하였다고 했습니다(민 22:21-35, 벧후 2:16). 엘리사의 몸종 게하시는 돈에 눈이 어두워 자기 상전을 속인 결과,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그에게 들어 처참하게 죽었습니다(왕하 5:20-27). 이처럼 돈을 사랑하면 그 탐욕이 지구보다 무겁고 전 세계를 다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은혜로 머물러 있으면 천하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책임을 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허영이나 사치, 이기주의, 방탕, 교만, 낭비는 모두가 악의 밑거름입니다. 돈에 손을 내밀고 나를 인도해 달라고 하는 자들, 부하려 하는 자들은 “돈, 돈, 돈” 합니다. 그러나 똥을 좋아하는 똥파리도 똥에 빠지면 죽습니다. 돈은 목적이 아니요 생활의 수단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헬라어 원어로 첫째, 손을 뻗친다, 둘째, 손을 내민다는 뜻입니다. 돈을 향해서 ‘은근히’ 남모르게 손을 뻗쳐 자기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 열망(熱望)한다는 것으로 돈 때문에 후끈 달아서 마음이 바빠집니다. 그러나 사람이 주인이지 돈이 주인입니까? 사람이 인격적인 사람이지 돈은 인격이 없는 물질에 불과합니다.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迷惑)’을 받는다는 것은 헬라어 원어를 볼 때 헛갈린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흐려져서 누구한테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여 갈팡질팡 하다가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잘 버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애써도 되지 않느냐’고 하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많은 근심’이란 많은 고통과 번민을 가리킵니다. 번민의 구름이 끼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데서 고통을 느끼고 누가 와도 멍하니 돈만 생각합니다. ‘찔렀도다’라는 것은 헬라 원어로 ‘송곳으로 찌르는 것’으로 보통 찌르는 것이 아니라 꿰뚫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것이 자살 행위요 자멸(自滅), 곧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돈을 몰라야 돈이 들어오지, 돈을 알아서 쫓아다니면 ‘줄 테니 따라오라’고 해놓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푼도 못 잡고 돈이 비웃습니다.


‘자족(自足)’하는 마음, 곧 ‘스스로 넉넉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족한 줄을 알고 뭐든 감사해야지 감사가 없으면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족(知足: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고 했습니다(딤전 6:6). 그러면 어떠한 것이 ‘자족(自足)’하는 마음입니까?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딤전 6:7). 욥은 하루아침에 열 자녀가 죽고 재산도 다 빼앗겼는데 설상가상으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손으로 긁어도 시원치 않고 깨진 기와 조각으로 긁었습니다(욥 2:7-8). 이런 욥을 본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할 정도였지만(욥 2:9),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 1:21-22).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지 않은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잠 23:4-5).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신다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신 8:18). 먹고 싶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고가(高價)의 침대도 살 수 있지만 편안한 잠은 사지 못합니다. 돈이 있으면 친구도 생기지만 우정이나 진짜 친구는 돈을 주고 못 삽니다. 돈이 있으면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집을 꾸밀 수 있지만 행복은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가장 귀하고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 공기, 비, 눈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창공에 반짝이는 별이나 봄날에 솔솔 불어오는 바람도 돈을 주고는 사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나 은혜를 돈 주고 삽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돈 주고 삽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 받은 기쁨과 즐거움, 영원히 활기찬 생기가 감도는 그 화창한 얼굴을 돈 주고 살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은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 자기 고향이나 친구를 위해 기도하는 자체가 값지고, 우주만물을 다 갖는 것보다 큰 부요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는 자체가 영생을 취하는 우리 장래에 좋은 터를 쌓아두는 순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예수 믿는 것을 다 보잘 것 없이 알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자손만대까지 책임지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근심, 걱정, 눈물, 괴로움, 한숨이 없는 요한계시록 21장 말씀이 바로 여러분들의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39:4-7 말씀을 볼때,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으니(벧후 3:8) 우리의 인생도 긴 것 같지만 잠깐입니다. 남은 생애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좇아가다가 마침내 생각밖에 죽지 않고 사는 마지막 가져올 하늘에 쌓아둔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골고루 나눠주실 때, 그 은혜를 받기만 하면 순간적으로 변화되어 주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7년 12월 5일 수요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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