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ㅣ SITEMAPㅣCONTACT US
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HOME > 참평안뉴스  
 
   
전영진, 김문성 부부의 시련을 이겨내는 기도
 글쓴이 : 관리자
 

전영진, 김문성 부부의

시련을 이겨내는 기도



전영진, 김문성 가정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를 부탁드리며, 암과 싸우고 있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전하고자 한다.


작년 9월 아내 전영진 성도는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 전 3번의 항암치료, 그리고 12월 16일 수술, 수술 이후 현재 총 5차까지 항암치료를 받았다. 정상 암 수치는 35라고 하는데, 1차 항암치료 때 암 수치가 6400이었다. 그리고 수술 직전 3차 항암치료 때 78까지 암 수치가 떨어졌고, 수술 이후 현재 5차까지 진행된 항암치료 결과는 암 수치 34. 정상 범위에 들어가는 결과다. 그리고 2월 10일로 예정돼 있는 6차 항암치료가 끝난 후 최종 검사결과에서 “암이 모두 사라졌습니다”라는 판정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난소암 말기 판정, 암 수치가 6400에서 34로

작년 9월 추석 때 전영진 성도의 배가 심하게 불러보였다. 가스가 찬 것 같아 가까운 병원에 가서 소화제 처방을 받았다. 며칠이 지나도 호전이 되질 않자 CT촬영을 했는데 복수가 차 있었고 이미 가슴까지 올라가 흉수까지 차 있었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인천길병원에서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주치의는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고, 수술해도 길어야 5년이라며 잘해주라고 했다.


말이 되질 않았다. 4개월 전인 작년 5월에 여성전문병원에서 난소암 검사도 받았고, 9월 초엔 건강보험 정기검진도 받았다. 그런데 5월 난소암 검사 때 걱정말라고 했던 2.6cm 혹이 10.3cm 암 덩어리가 돼 있었고, 전이된 2.3cm짜리 혹이 하나 더 발견됐다.


“집사람을 진료실 밖으로 내보내고, 의사는 수술해도 가망성이 낮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요. 우선 집으로 택시 태워 보내고 주차장으로 갔는데 그때 엄청 울었어요. 운전을 못하겠더라고요.”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교회에 기도 부탁을 드리고 가까운 분들과 상의한 결과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길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잡았던 10월 14일에 신촌세브란스병원 진료예약을 했다. 여기서는 현재 암이 너무 크니까 항암치료를 3번 진행해 보고 암 크기를 최대한 줄여놓고 경과보고 수술을 하자며 항암치료는 많이 힘들어서 환자 의지가 중요하니까 잘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항암치료. 한 발짝 앞도 예측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1차 항암치료 때 암 수치가 6400, 2차 때 2200, 3차 항암치료 후 78까지 암수치가 떨어졌다. 담당 교수도 검사 결과를 보고 ‘78이 맞냐’며 ‘잘못된 거 아니냐’고 깜짝 놀랐을 정도. 너무나 감사하게도 치료 결과가 좋아 바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하지만 암이 너무 많이 퍼져 있다며 5개과 의사들이 줄줄이 대기해야하는 대수술이었고, 오후 1시에 시작돼 새벽 2시가 넘어야 끝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가 6시간 만에 수술방에서 나오더니 보호자를 찾았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겁이 나서 “벌써 나오시면 어떡해요?” 그랬더니 웃으면서 땀을 닦더니 “항암치료가 굉장히 잘 받는 것 같아요. 암이 많이 줄었더라고요. 앞으로 3번의 항암치료는 꼭 하셔야 합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수술 후 2번의 항암치료가 더 진행됐고, 가장 최근에 5차 항암치료 결과 암 수치가 34까지 떨어진 것.


하지만 암은 절대 안심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검사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눈에도 안보이는 마이크로 암세포가 살아남아 재발되는 경우가 많아 꾸준히 관리하면서 긴 싸움을 해야 한다고 한다. 혹여 재발되는 경우는 항암치료도 이겨낸 암세포들이라 더 강해져서 항암치료로도 죽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제가 쓰는 항암 치료약은 특별한 약도 아닌데 효과가 좋아서 암 수치도 의사가 놀랄 정도로 떨어지고, 수술이 잘 된 것도 다 기도 덕분인거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수술 후에 전이되는 경우도 많아서 그저 기도밖에 없다는 게 절실하게 다가와요. 마지막 6차 항암치료만 남겨두고 있는데, 수술 후에 항암치료가 더 힘들긴 하더라고요. 수술한 몸이라 진통제 먹으면 좀 자고, 한 달 넘게 잠을 제대로 못자서 잘 자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자거든요. 마지막 남은 항암치료도 잘 받고, 하루하루 잘 이겨낼 수 있게 성도님들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이들한테 엄마 손길이 필요한데 빨리 집으로 가야죠”

지금까지 어려운 고비들을 잘 넘겨왔다. 초기엔 복수와 흉수 때문에 누우면 숨쉬기도 어려워서 앉은 채로 잠을 자야했다. 복수와 흉수를 빼기위해 호수를 두 군데 차고 2차 항암치료 때까지 거의 10,000cc 정도의 물을 빼냈다. 2차 항암치료 후 다행히 호수를 빼서 조금 편안해졌으나, 머리카락은 다 빠진 상태였다.


3차 항암치료까지 잘 마치고 경과가 좋아 수술은 결정됐으나, 이미 목, 가슴, 간, 대장, 직장에도 전이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최대한 암세포를 모두 제거해야하기 때문에, 전이된 상태에 따라 여러 장기를 절개나 적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술 집도의도 놀랐을 정도로 수술 전 항암치료 결과가 너무 좋아서 난소 자궁 쪽 외에는 암세포가 거의 죽어서 없더라는 것. 그래서 수술도 예상보다 일찍 끝났던 것이고, 수술 끝나면 중환자실로 간다고 했던 것도 회복실에 있다가 바로 입원실로 갈 수 있었다.


현재 전영진 성도는 요양병원에서 온열치료, 전신치료 등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항암치료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죽이기 때문에, 병원에서조차 ‘이건 독을 몸에 들이붓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도 처음엔 무섭고 두려웠는데 교회 성도님들과 주변에서 기도 많이 해주시고, 가족들이 힘이 많이 돼주니까 두려움이 점점 없어졌어요. 어쨌든 제가 살아야 되잖아요. 애가 셋인데... 살아야 되니까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기도하니까 다른 사람들보다는 수월하게 잘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온몸이 저리거나 하는 부작용도 심하지 않고, 먹으면 다 토하거나 한 달 동안 못드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래도 잘 먹고 있어요. 저는 기도 많이 해주셔서 견딜 수 있을 만한 정도로 가볍게 잘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힘든 티를 잘 안내는 편이라 ‘항암치료니까 아픈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곤 해요.”


3주마다 항암치료를 하는데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치료 일정이 지연된다. 그래서 백혈구 수치가 안 떨어지게 단백질 섭취도 하고 음식을 잘 먹어야한다. 그래서 치료받고 몸도 저리고 눕고 싶고 무기력해도 잘 먹으려고 노력한다.


“옆에서 보면 집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억지로라도 먹으려고 하고, 토해도 다시 먹고, 잘 버텼어요. 식사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진통제 없으면 생활을 못할 정도로 아파할 때도 잘 견뎌냈어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가족사진 한 장을 요청했다. 남편 김문성 성도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아내한테 미안하다고 고백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가족사진 한 장이 없네요. 후회가 되요. 애들이 다같이 여행가는 게 소원이라고 그랬었는데 그걸 하나 못 들어줬어요. 세브란스병원 가기 전에 이틀 정도 같이 집에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집사람한테 속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하겠더라고요. 그 말밖에 안 나왔어요.”


아내는 이내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1차 항암치료 끝나고 한참 힘들 때 한 번 울면서 ‘사실 힘들었다’고 하더란다. 교회 직원과 결혼해서 남편은 청평, 여주 등 지방 근무는 물론 미국도 오래 가있어야했다. 가족들과 한집에서 같이 지낸 기간이 채 몇 년이 되질 않는다. 그것조차 경건회 시간 맞춰 새벽 출근했다가 밤늦게야 퇴근하는 남편이었다.


“너무 미안해요 집사람한테.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데 과연 붙잡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이런 상황이 꿈을 꾸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일어나면 꿈이겠거니 하는데 현실인거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을 못 잤어요. 그러다 어떻게 잠이 들면 가슴을 누가 꾹 누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해서 숨을 ‘허억~’하고 몰아쉬면서 잠이 깨곤 했어요.”


1차 항암치료 받을 때쯤 소파에서 잠깐 잠이 든 사이 꿈을 꿨는데 원로목사님께 집사람이 암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놀라시면서 가족들 모두에게 안수를 해주셨다고 한다. 너무너무 절망스러웠을 때 존경하는 목사님께 기도 부탁드리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꿈으로 대신한 것 같다.


“저희가 교회에 큰 빚을 져서 앞으로 신앙생활 열심히 해야겠다고 얘기해요.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삶을 연장해 주셨으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사는 것뿐이고 틀림없이 이 과정 속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주시려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지 않을까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큰딸부터 세 자매는 외할머니가 돌봐주고 계신다. 그리고 구정 연휴에 잠깐 집에도 다녀왔고, 아이들과 모여 사진도 찍었다.


“집에 잠깐 갔다 왔는데 아이들한테 엄마 손길이 필요한 게 보이더라고요. 빨리 회복해서 집으로 가야죠.”


글_참평안 취재팀

 
   
 




 
 
인도네시아어 구속사 시리즈 6권 출판…

만사형통의 축복이 쏟아지다: 2017 하…

Re:2017 NY Conference 구속사의 완성을 향…

찬란하게 빛나는 섬나라, 스리랑카

성경 보수 운동의 선봉, 기독사관학교…

동남아시아에 미리 뿌려진 말씀의 씨…

남미 대륙 최초 구속사 세미나 열려

등사기로 밀어 찍은 1970년대 휘선 박…

전영진, 김문성 부부의 시련을 이겨내…

구속사 말씀 승리의 날 감사예배

불교 국가의 심장부에서 선포한 구속…

쉬지 않고 전진하는 말씀의 역사: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