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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 주대철 장로
 글쓴이 : 관리자
 

나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주대철 장로




“풍족하던 집안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갑자기 기울더니

부모님께서 연달아 돌아가셨고,

저와 형제들은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주대철(63) 장로는 “어린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님께 기도하는 것과 공부에 매달리는 것뿐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학박사인 주 장로는 1996년 중소기업을 창업해 22년째 경영하고 있는 베테랑 경영자다.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2003년부터 5번째 연임하고 있고,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직을 2007년부터 3번째 연임하고 있다.


그는 1955년 지리산 자락에 있는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교와 불교가 혼합된 문화를 갖고 있어 1년에 제사를 13번씩 지냈다. 경제적으론 마을에서 큰 부자로 손꼽히기도 했다.


“유복했던 시절은 잠깐이었습니다. 7살 되던 해에 큰아버지와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이 기울면서 쫓겨나듯 고향을 떠나 거제도로 이사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 끌려가 부상을 입고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거기에 사업 실패로 인한 화병이 겹쳐 거제도로 이사간 뒤엔 늘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이 거주하던 집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성도가 몇명 안 되는 지세포교회가 있었다. 주 장로와 그의 가족들은 옆집 아주머니의 전도로 난생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됐다. 이를 계기로 교회 전도사가 2~3일 간격으로 아버지의 문병을 와 말벗이 되어 주고 말씀을 전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큰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병환으로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도 4개월 후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형제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넉넉지 않았던 친척집을 전전했고, 눈칫밥을 먹다 결국 고아원 생활을 해야 했다.


주 장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아원에 들어가 기도와 공부에 매달렸다. 중학교 때까지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지만 고아원에서 후원해주는 교육은 중학교까지였다.

“중학교를 마치면 다른 집에 머슴으로 가든, 학업을 계속하든 본인이 선택해서 고아원을 나와야 합니다. 저는 고아원을 나와 진주에 있는 사진관에 취직해 진주공업고등학교 야간부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엔 공부하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공고 야간부에 다수를 차지했던 불량한 학생들과 지내면서 회의감을 느껴 자퇴했다.


이후엔 취업의 길로 들어서면서 학업은 더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평강제일교회를 만나 박윤식 원로목사의 설교를 듣게 됐다. 그 당시 박 원로목사는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으니 권사든 장로든 꼭 공부를 하라. 혼자 하기 어려우면 방송통신학교라도 다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주 장로는 공부를 하던 시절이 그리워졌고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제 아내인 윤순남 집사와 두 딸은 당시 제가 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서울대, 카이스트 등 유명 대학교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했기 때문에 주변에선 모두들 저에게 ‘주 박사’라고 했지만, 저는 사실 고등학교를 중퇴했기 때문에 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부터 시작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공부할 시간을 내기는 힘겨웠지만 그는 무작정 교재를 구입했다. 그는 “남들이 보면 창피할 것 같아 자격지심에 교재의 앞뒤 표지를 다 떼내고 소설책인 것처럼 다른 표지를 붙여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차량으로 이동할 때, 사우나 탕속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루 3시간씩 자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재를 붙잡고 씨름한 끝에 4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검정고시 합격 후 진학할 대학을 알아보던 그는 기업 경영으로 잦은 해외출장을 다니고 있어 오프라인으로 학교를 다니면 중도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3년 만에 조기졸업 했다.


학사 학위 취득 후 사업과 연관이 있고 회사와 접근성이 좋은 한국산업기술대학교에서 산업경영학 석사 학위를 2년 만에 취득했다. 또 IT관련 사업을 하던 그는 한세대학교 대학원 IT융합학과에 입학해 3년 만인 2017년 2월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장로는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단기간에 학위를 땄지만 그 과정은 무척 괴롭고 고단했다고 했다.


“중소기업의 대·내외적 환경은 매우 취약합니다. 특히 제가 경영하는 IT관련 업종은 부침이 심합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휴대폰 부품 중 키패드(번호판) 부분인데, 스마트폰 등장으로 이 업종 회사가 모두 부도나고 폐업을 하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우리 회사도 수십억 원의 손해보게 됐고 그 와중에 공부를 계속하기가 괴롭고 힘들었지만 원로목사님의 권면을 기억하고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그는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까지 가족들도 그가 공부를 하는 줄 모를 정도로 ‘도둑 공부’를 했다고 한다.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야 아내와 두 딸에게 과거를 털어놓을 수 있었고,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저를 이해해 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주 장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박윤식 원로목사였다고 한다.


“막상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제가 학위를 딸 수 있는 계기가 돼 주신 원로목사님께서 천국에 계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는 슬픔이 앞섰습니다.”


그와 아내 윤순남 집사는 평강제일교회를 다닌지 어느덧 35년이 됐다. 신앙 안에 성장한 큰딸 주한나(29) 성도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귀국해 홈쇼핑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 딸 주한솔(24) 성도는 숭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공학박사가 됐지만 그의 공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릴 때 꿈은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비록 목회자는 아닐지라도 장로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 해야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베리트 신학교에서 성경학 박사과정을 밟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구속사 말씀과 성경 공부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글_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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