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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박사-역사를 말하다
 글쓴이 : 관리자
 
대한민국의 잔 다르크, 역사를 말하다 

‘한국 학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이인호 박사.
1936년생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모교인 웰슬리대(학사), 뒷날 하버드에 통합된 명문 여대 래드클리프(석사), 하버드대(박사)에서 서양사를 배웠다. 콜롬비아와 럿거스대 조교수로 일하다 1972년 귀국, 고려대, 서울대 교수를 지냈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은 그녀를 핀란드 대사로 임명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여성 대사였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4강 대사의 하나인 러시아 대사로 발탁했다. 2000년 대사직을 마친 뒤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 카이스트 석좌교수, 명지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로 일하고 있다. 개혁적 보수진영의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이인호 박사는 지난 6월 20일 열린 제7회 나라사랑 웅변대회 심사위원장으로 평강제일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7월 9일 그를 다시 만났다.


역사 교육 논란이 뜨겁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애국심은 역사를 배우는데서 나온다.”고 말씀했다.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나
역사를 배우면 애국심에 앞서 사람이 바로 된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겸손해진다. 다른 환경,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고, 무슨 일들이 일어났고,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를 알게 되면 사람을 보는 눈이 현실적이 되고 균형이 잡힌다. 그래서 역사 공부는 인간교육이다. 인간 교육이 제대로 되면 자연히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에 대해서도 충성심을 갖게 된다. 시민으로서의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애국심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교육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시험 위주로 암기만 시키니까. 영어의 ‘history’, 독일어 ‘Geschichte’, 프랑스어 ‘histoire’에서 보듯 역사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실제 일어난 인간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감동 받게 해야 하는데 딱딱한 백과사전처럼 연대와 이름만 의미 없이 나열하니 골치 아픈 과목이 됐다. 거기다 ‘개념’을 가르친답시고 교사들이 이른바 ‘사료’(史料)라는 걸 집어넣으면서 정치도구화하기 딱 좋게 만들었다.


중등 교과서에 보면 미군과 소련군이 해방 후 한반도에 진주할 때 발표한 포고문을 실었다. 미군의 포고문 1호는 사회 질서를 잡아야 하니까 질서를 지키고 명령을 따르라는 전형적인 군사포고문이다. 그런데 소련군의 포고문은 ‘우리는 당신들을 해방시키러 왔고 당신들이 나라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러 왔다.’는 식이다. 이것만 보면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은 해방군이다. 실상은 전혀 반대다. 미국은 승승장구해왔고 한번도 본토가 침략 받지 않은 나라로서 우리를 도울 여력도, 의지도 충분했다. 반면 소련은 망하기 직전에 독일의 항복을 받은 나라였다. 뭔가 전리품을 빼앗아가야 할 전승국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른바 ‘사료’를 선전에 이용해 역사 인식이 뒤틀리게 하고 실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건국을 반대하는 좌익 세력과 싸우면서 태어났다. 반대세력을 늘 속에 품
고 살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지하에 숨어서 파괴했다. 평생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이승만 박사지만 나라를 파괴하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자유를 줄 수는 없었다. 그런 모순이 안에서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산당은 러시아 투쟁 정당 시절부터 발달한 거짓과 선동,선전 기술을 가지고 싸웠다. 그런 고도의 투쟁에 대응하다 보니 우리 경찰, 군대, 사
법부의 오판도 나왔다. 그것이 다시 비난의 대상이 됐고... 이렇게 어렵게 투쟁을 하면서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6·25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진 것이다. 6·25 전쟁은 스탈린이 주저하고 거절하는데도 김일성이 집요하게 설득하고 마오쩌뚱의 지원 약속까지 받아 일으킨 전쟁이다. 6·25 전쟁만 없었어도 체제는 달라도 동, 서독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이렇게 된 건 김일성 탓이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같은 사람은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 달이면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김일성이 적화 통일했을 거라는 얘기다. 자기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나라가 없어져야 하고, 생겨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제대로 된 사람이 되고 제대로 된 영혼을 갖고 살 수 있겠나.

‘이념’이 ‘국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으니까 그러는 것 같다.
‘정의’와 ‘진실’의 개념 자체가 다르니까
지금은 이념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본다. 해방 당시에는 이념으로 죽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옳다고 믿는 길을 위해 한 몸 던지는 순수함이 있었다.
지금 종북 좌파는 그런 순수함만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상당 정도 이권이 개입돼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권력과 돈의 맛을 봤다. 지금은 그걸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면이 더 강하다. 아무리 이념을 믿더라도 세상이 달라진 것은 볼 수 있지 않겠나. 내가 제일 존경하는 역사 학자가 지난해 별세한 영국의 에릭 홉스봄이다. 그 분은 공산당원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학자다. 이념으로서 공산주의를 받들었지만 절대로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다. 노동자 중심으로 역사를 본다는 사관(史觀), 그거야 뭐 어떤가. 그러나 그 분도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자신이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알았다. 대처 총리가 당선됐을 때도 영국이 잘못돼 간다고 통곡했던 분이었지만 그 이념은 순수하게 이상으로 지켰을 뿐, 그걸 위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왜곡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북 좌파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인간으로서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모든걸 솔직하게 느끼고 마음으로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나온 물질적 이점은 다 누리면서 입으로는 다른 소리를 한다. 자식들은 미국 유학 보내면서 반미를 외친다. 인간으로서 파괴된 것이다.

좌파 지식인들은 우파에 대해 ‘반공이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비난한다
‘반공’이 잘못됐다고? 그건 공산주의가 좋다는 뜻 아닌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파산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반공이 잘못됐다’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 가지 조그만 변명을 찾자면 박정희 정부 때의 반공 교육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왜 나쁜지는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뿔난 도깨비처럼 가르쳤다. 공산주의를 연구하다 보면 실체가 밝혀지고 비판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공산주의 연구서적조차 읽지 못하게 하니까 당시의 386세대들이 ‘자기들 독재정권 유지하려고 실체도 없는 공산주의를 나쁘다고 하는구나.’ 하는 심리
가 생긴 거다. 그런 배경 속에 리영희 교수와 빨치산 출신 박현채 교수 같은 이들이 쓴 책들이 운동권의 성서처럼 읽혀나갔다. 현실은 외면한 채 낙후된 공산주의 서적들에 기초해서 스탈린과 마오쩌뚱 체제를 미화하고 한국은 미국의 종속 경제, 식민지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지적으로 허기졌던 대학생들이 입학하기도 전부터 그런 책으로 허기를 채우니 제대로 된 음식은 먹지도 못했다. 대학에서의 4년은 온전히 자기를 연마하는데 써야 하는 시간인데 공부는 하나도 못하고 최루탄 맞으면서 구세주 된 듯이 뛰어 다녔으니 지적, 도덕적, 정서적 양식을 흡수할 시간이 없었다. 그것이 지금의 486 세대다. 그 부작용이 계속되고 있다. 좋은 의미에서의 ‘비판적’ 사고를 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좌파의 ‘반공’ 비판에는 우파가 ‘반공’을 이데올로기로 삼아 매카시즘 공세를 한다는 뜻도 포함된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아서 당시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는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이들이 너도 나도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을 가지고 토론을하고 있더라. 처음에는 ‘왜 그렇게 그때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까’ 싶었다. 내 전공은 서양사니까 섣불리 얘기할 처지도 아니었고. 나중에 보니 그것이 바로 북한의 손이 이미 뻗쳐 있다는 증거였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그런 식으로 시킨 것이다.
당시 국사학자들은 우리 정부도 못 마땅하고, 그렇다고 좌파에 가서 설 수도 없으니까 아예 현대사는 안 다루고 넘어가 버렸다. 그렇게 생긴 공백에 반 대한민국 세력이 조직적으로 들어온것이다. 역사 보는 눈을 그쪽에서 다 잡아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 전까지는 민주, 자주, 선거의 개념조차 없던 나라다. 해방된 뒤 비로소 학교에서도 반장 선거도 해 보고 그런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기초도 없던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진 것은 기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의지로 밀어붙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서 쟁취한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수십 년에 걸쳐 민중운동을 하고 피를 흘리면서 쟁취한 독립선언, 인권선언 같은 것을 우리는 공짜로 받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거꾸로 이승만 박사가 민주주의의 파괴자라는 소리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호 박사는 지난 3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원로 초청 오찬에서 당시 조회수200만을 넘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다큐 영상 ‘백년 전쟁’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다. 이승만 전대통령을 ‘하와이 갱스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뱀 같은 인간’으로 묘사한 영상이다. 이인호 박사는 이 영상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 달라.” 고 요청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수첩에 메모하며 “잘 살펴보겠다.”고 답한것으로 보도됐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표면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는 사랑이 있는지 여부이다. 공산주의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짓이 수반된다. 미움이 생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그걸 망각하고 기독교적 이상을 가진 목사님이나 신부님 중에도 그쪽에 경도된 분들이 많다. 그런데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공산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셨다. 그가 1920년대에 쓴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라는 짤막한 논설이 있다. 당시 독립운동 세력들도 공산당이 내보내는 호소, 즉 공산당의 도움을 받으면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다는 매력적 구호에 많이 감화를 받
고 있을 때였는데 이 박사는 그 이념이 잘못된 것을 이미 알아봤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과 같지만 그들의 방법대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주고, 기업가들을 괄시하면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딱 간파한 것이다.
스탈린의 독재가 얼마나 흉악한 것인지 모른다. 그 영향권으로 일단 들어가면 ‘독립’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이 박사는 알고 있었다. 스탈린의 정치가 얼마나 포악했는지 역사적 사실로 다 드러나 있다. 동구의 여러 나라들이그 영향권에서 해방되려고 무진 노력했지만 결국 안 되고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야 나온 것 아닌가. 이박사의 말이 100프로, 200프로 맞았다. 북한은 이미 소련에 점령됐으니 어쩔 수 없고,적어도 남한만이라도 빼앗기지 말고 지켜서 독립 국가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혈투를 하신 것
이다. 지금 종북 좌파들이 이승만 박사를 미워하고 지목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이 박사가 없었으면 쉽게 한반도를 공산화했을 텐데 그 때문에 못했으니 철천지 원수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덮어버리고 종북 세력이 모든 걸 민주화 투쟁으로 포장하니 많은 사람이 세뇌돼 버린 것이다.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비판을 받는 근거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부정선거 등이다
이 박사가 형식적인 면에서 절차를 위반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정치세력간의 싸움이지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한 것은 아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위한 수정헌법을 통과시킬 때도
반대당 의원들을 매수하고 압력을 넣고 별 일을 다 한다. 이 박사는 전쟁 중에도 국회의원 선거를 다 치렀고 헌정 질서를 지키는 데에는 철저했다. 발췌 개헌은 국민들의 지지는 자신에게 있는데 야당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니까 직선제로 개헌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한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나중에 1980년대에 우리 국민들이 직선제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싸웠나.
1987년의 성과가 직선제 쟁취라고 하지 않나.
물론 부정선거는 잘못한 일이다. 이승만 박사는 부정선거 하지 말라고 밤낮 강조했지만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이 자기가 지게 되니까 대대적으로 부정선거를 저지른 것이다. 이 박사는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고 “불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건 젊은이가 아니다.”라며 항의 시위에 대해 잘했다고 칭찬했다. 이런 대통령이 어떻게 독재자인가. 그가 권위주의적이고 강력한 지도자인건 맞지만 독재를 한 적은 없다. 독재자의 전형이 뭔가. 가족들이 호의호식하고 치부하는 것이다. 이 박사는 몽당연필 갈아 쓰며 생활한 분이다. 독재자의 사욕이 어디 있었나.

4·19는 국민의 주인의식이 그만한 수준에 올라서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민주주의의 단계다. 그 때 부통령 선거의 부정을 인정하고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대통령 하야까지 갈 일은아니었다. 이기붕이 하야 성명을 즉각 냈으면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했던 것이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가 욕심 많고 독단적인 인물이어서 밤중에 ‘하야’를 ‘하야 고려’로 고쳐서 성명을 냈다. 그래서 다시 교수들,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니까 미국도 이 박사가 물러날 때라는 입장을 취했고 이 박사도 이러다 다시 국민들이 피를 흘리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판단해서 물러난 것이다. 그것을 독재정권 타도했다고 과장하기 시작한 것은 종북 세력의 입김이 들어가면서부터다. 우리 때는 4·19를 의거(義擧)라고 했다. 의로운 정치를 제대로 하라는, 대한민국을 헌법정신에 맞게 운영하라는 의로운 거사였지, 대한민국을 뒤엎자는 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국민들이 그렇게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1987년 이후부터 4·19를 혁명이라고 하면서 마치 4·19가 1948년 체제에 반대되는 것처럼 종북 세력이 끌고 나오는 것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협력 대상으로 보느냐, 그리고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느냐, 그럴 생각도 힘도 없다고 보느냐의 시각에서 우리 사회가 반으로 갈리는 것 같다
북한은 첫째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고 궁극적으로는 포용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었으니까 쉽게 문제가 해결되리라 보는 건 전적으로 환상이다. 그건 버려야 한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남쪽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고 유엔에 동시가입하면서 우리는 북한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도우면서 북한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문제 해결의 제일 좋은 방안이라고 봤다.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용정책의 골자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여건이 좋으니 당분간은 ‘묻지 마’ 식으로 도와줘서 신뢰가 생기게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목적은 북한을 망하게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서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거니까. 대신 김 대통령이 조건을 달았던 것이 있다. 절대로 도발은 용납하지 않고 한미 동맹 체제도 굳건하게 지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김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러시아 대사로서 해볼만한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이라고 보고 홍보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금방 약속이 깨지기 시작했다.
도발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도발을 아무렇게나 해도 우리는 네, 네 하면서 굴종적으로 들어갔고 한미 동맹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대북 포용정책은 뒤틀리기 시작하고 북한이 점점 더 우리를 쥐고 흔드는 식이 됐다. 포용정책이 나오기 직전의 북한 상황은 자립 능력이 도저히 없어서 남한으로 흡수통일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 여론이었다. 중국도 아직 약했기 때문에 우리가 좀 강수를 써서 북한을 흡수통일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우리가 잘못 계산한 것도 있지만 서로 반대되는 우리 사회 두 세력이 야합한 측면도 있다. 북한을 진짜 미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세력은 북한이 무너져 내렸을 때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을 지기 싫으니까 그 수준에서 조금씩 살아가게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고, 반대쪽은 친북이기 때문에 북한이 망하는 걸 어떻게든 막아줘야 했다. 그런 두 세력이 서로 이용하는 냉소적인 관계로 맺어진 것이 포용정책이라고 본다.
진짜 통일 정신은 ‘남북이 합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나라도훨씬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니 당분간 남한은 경제적으로 좀 희생하면서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정치 체제만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우리가 애써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저쪽도개혁 개방하게 해서 우리가 입는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입게 하자’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2000년 6·15 공동선언 2항은 어중간하게 양쪽의 체제를 절충하면 된다는 식으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고 해놓았다. 형식은 비슷할지 몰라도 정신은 전혀 다른데... 그래 놓고 그 뒤부터 정치인들은 통일 지상주의 풍토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김정일 얼굴만 보면 출세할 것처럼 갖은 감언이설을 해가면서 달려들었다. 그러니 북한이 우리를 얕잡아 보기 시작했고 핵까지 개발하고 우리가 완전히 되잡힌 것이다. 지금은 평화 통일 가능성은 훨씬 더 멀어졌다.

북한이 적화통일의 목표를 버리지 않았다고 보나
사실은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로 보는 사람도 없다. 러시아 사람들도 북한을 한번도 공산체제로 보지 않았고 전통적인 괴상한 독재 체제가 공산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교묘하게 배합된 거라고 생각했다. 공산주의 사회가 스탈린 사망 후 1956년부터 개혁되기 시작하는데 그걸 거부한게 북한이다. 그 후 중국도 개방체제로 들어섰는데 북한은 그걸 또 거부했고... 이건 괴물이다.

북한은 이제 공개적으로 ‘한민족’이나 ‘조선 민족’이라고 하지 않고 ‘김일성 민족’이라고 표현하더라(2012년 ‘태양절’ 김정은 공개연설문)
김일성 민족에 의한 통일이 목표인 것이다. 김씨 집안 중심의 통일을 목표로 하는 것, 김씨 왕
조 체제다.

좌파 지식인들이 우파를 비난할 때 ‘우파에게는 정의, 공정, 박애 같은 가치가 없다’고 한다
흔히 그들이 하는 소리가 북한에 인권 없다고 하면 우리나라에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탄압과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인권 탄압 받았다는 건 차원이 다르다. 군사독재 시절 허용이 안됐다고 하는 건 정치적 자유지, 우리가 언제 생업의 자유, 거주의 자유를 박탈당한적 있나. 우리 체제의 인권탄압이라는 것은 대부분 삼청교육대 같이 범죄자들을 혹독하게 다뤘다든가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했다는 것이지 북한 같이 기본 인권이 보장 안 되고, 굶어죽는 국민들이 자구책을 구하는 길까지 막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걸 같은 잣대로 얘기한다면 위선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탈북자나 북한 동포 문제 얘기하는 것조차 금기시하지 않나.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왜 없다고 하나. 하느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모두가 똑같이 잘 사는 사회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소련이 그걸 한다고 하다가 실패한 걸뻔히 보지 않았나. 사회 전체가 발전 못하고 몇 십 년의 역사를 상실하고 말았다. 공산당의 독재 정치였고 엘리트를 뺀 모든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현실을 보지 못하고구호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그리고 민족이란 말에 취해 환상을 일으키면 안 된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해 달라
세계 고전 문학작품을 많이 읽히라고 하고 싶다. 그 속에 삶의 얘기가 다 농축돼 있다. 고전은오래 됐어도 보편적 가치가 상실되지 않았으니 여전히 읽히는 것이다. 서양 고전이든 동양고전이든 읽으면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된다. 사람의 본성은 잘 변하지 않는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사람이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뿐이다. 중요한 건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이다. 영적인 존재, 정신적 존재로 자기를 잘 인식하면서 잘 살려고 노력하는 습관을 일찍부터 길러주는 것과 동물적 차원에서 동물적 욕구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가르치는 건 천지차이다.
언제 고전을 읽을 겨를이 있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잘 나가는 나라들의 교육 프로그램에는그런 부분이 손실되지 않고 있다.

고전에는 기독교의 성서도 있을 거고 유교나 불교의 경전도 있을 것이다. 고전을 핵심으로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걸 응용한 책도 읽혀야 한다. 그런데 한심스런 현실은 좌파의 문화 권력이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유아교육 시장에까지도 계급투쟁 정신을 기초로 한 것들이 쫙 깔려 있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보고, 믿고,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서로 싸우고 속이는 것을 생각하게끔 한다. 아이들 마음에 병을 들이는 것이다. 시인들 문학 강의에도 모윤숙, 서정주는 다 빠져 있고 자기들 구미에 맞는 시인만 있다. 무서운 일이다.


한국 교회의 역사적, 시대적 사명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독교 본연의 메시지, 즉 인간이 하나님 피조물로, 영적인 존재로 다같이 소중하다는 근본 정신을 깨우쳐 주면서 자기 가까운 이웃부터 챙겨서 전 세계를 사랑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교회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탈북자들을 끌어안으라는 것이다. 국내에 탈북자가 3만 명쯤 된다고 한다. 한 가정이 한 사람의 후원자가 돼서 자기 가정이 편안한 마음으로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그들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야유회 갈 때 같이 초청해서 데려가고, 외식할 때 한번 초대해서 같이 가고, 그러다 좀 더 가까워지면 집에도 한번 초대하고, 이렇게 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정상적 생활 속에서 접촉하는 면을 좀 가지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탈북자 프로그램을 보면 단체로 불러서 밥 먹이고 선물주고 보내는 식이다. 그건 인간 대 인간의 접촉이 아니다. 탈북자들도 원숭이 된 기분이지 고맙다고 느끼지 않는다. 나도 미국에 처음 유학 갔을 때 같은 동네 사는 어떤 분이 나를 도와주기로 정해졌다. 가을에 단풍 구경 가는데 따라가겠느냐고 하고 집에 와서 밥 같이 먹자고 하고, 그러면서 모르던 세계를 보고 미국인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어떤 점은 다르고 어떤 점은 우리와 똑같구나 느끼고, 인간으로서 교감이 생기더라. 그런데 탈북자들이 그런 기회를 전혀 못 갖고 있다.
북한에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인까지 지냈다가 남편의 전실 자식이 잘못하는 바람에 평양 추방령이 내려지고 결국 탈북한 최진이라는 시인이 있다. 그가 쓴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라는 책에 묘사된 북한 상황을 보면 눈물 없이 읽을 수가 없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래도 안정이 돼서 대학원 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음악회 표가 있기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몇 십 년 만에 음악회를 가 봤다며... 교인 한 가정이 마음먹고 도와주면 그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만 부담 갖지 말고 한 사람씩 해야 한다.

박윤식 원로목사님이 저술한 근현대사 시리즈를 읽으셨나
아,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생생하게, 정말 소설 읽는 것 같이 재미있게 서술하면서도 철저하게 연구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맙게 생각하면서 역사학자들한테도 보내주고 이런 걸 본보기로 하라고 여기저기 돌리고 있다. 역사란 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론과 해석을 얘기 하기 전에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인호 박사는 평강제일교회에서 열렸던 나라사랑 웅변대회를 또 화제에 올렸다. “정말 탄복했다. 그렇게 큰일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렇게 분위기가 좋고 모든 것이 좋은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가 다녔던 미국 웰슬리 대학에는 전교생이 필수 선택해야 하는 두 과목이 있었다고한다. 하나는 ‘프레쉬맨 잉글리쉬’, 그리고 또 하나는 ‘성서의 역사’다. 덕분에 신,구약성경은 모두 읽었다고 했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교회를 다닌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하나님의 계획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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