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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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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김계남 권사의 러브 스토리
 글쓴이 : 관리자
 




‘변화’를 바라보며 사신다는 김계남 권사. 92세. 어떤 분일까 연락했는데 본인이 직접 전화를 받으셨다. 아주 힘 있는 목소리로 자신은 「참평안」지에 나올 만한 사람이 못 된다며 인터뷰를 고사하셨다. 빙판에 크게 넘어지신 후 교회에 못 나온 지 20여일 됐다고도 하셨다. 우리는 여건이 허락 할 때까지 그 언젠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갑자기 인터뷰하러 집으로 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2014년 12월 17일 천국에 입성하신 박윤식 원로목사님이 꿈에 나오셨다는 거였다. 원로목사님도 방문하셨다는데, 안 갈 수가 없다. 우리는 출장 인터뷰를 감행했다. 파주 옆 김포였다.


할 일이 태산 같은 92세 권사님

“집 앞에서 81-1번 버스타고 계양역까지 가서 전철로 부평까지 10개 역을 가. 거기서 오류동가는 열차를 타고 9개 역을 또 가지. 거기서 차박차박 걸어가면 교회까지 총 2시간 반, 3시간이 걸려. 그러니 지치는 거야. 나이가 드니까 내 몸 좀 봐. 시들어지고 비틀어 진거야. 여기 김포에 2012년 3월 28일에 이사 와서 그해 12월에 빙판에 나가 떨어졌어. 그 자리에 떨어지면서 ‘하나님 아버지, 이거는 아닌데.’ 했지. 넘어지기 일주일 전에 내 나이 서른에 먼저 간 남편이 꿈에 나와서 ‘나랑 가자. 너무 외롭다.’ 하는 거야. 그때 내가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못가. 가족 전도도 못했는데 어딜 가.’ 소리 지르면서 손을 뿌리쳤어. 그때 허리가 부러졌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하고 교회에 갔어.”


김포의 신도시에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 권사님 홀로 우리를 기다렸다. 큰 아들집에서 함께 살지만 교회에 오는 것은 오로지 권사님 혼자다. 거처하는 문간방 입구에서 교회에 가는 고단한 길과 아픈 몸을 하소연하며 우리를 안아주셨다. 반기는 목소리는 선명한데 눈은 흐렸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교회 가는 길을 선명하게 묘사하는지 신기했다. 허리 수술 하셨다는 분이 우리 일행이 아파트 경비실을 통과하지 못할까봐 지팡이를 짚고 나가 손님 올거라고 당부하셨단다. 방에 앉자마자 이야기가 쏟아진다. 너무 빠르고 두서없이 쏟아지는데 어찌할 바 몰라 노트북에 받아치기 시작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일석교회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왔다.


“우리 집에 우물이 있었어. 아들이 계단을 내려오다 장독대에 놓아 둔 버너를 우물에 퐁당 빠뜨렸어. 그때는 내가 기도를 할 줄 모를 땐데, 두레박을 내리면서 ‘하나님이 계신다면서요. 그럼 하나님 눈에는 그게 보이실 것 아녜요. 이거 좀 올려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진짜 두레박에 달랑달랑 걸려 올라오는 거야.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바로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고 기도 했어.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았지. 부뚜막을 밟아야 방을 올라가. 아궁이 옆에 사과 궤짝 두 개를 놓으면 그게 찬장이야. 그 방에서 시금치, 콩나물, 열무 무쳐서 함께 먹으며 구역 예배 드렸어. 하루는 느닷없이 원로목사님이 우리 집에 오신거야. 진짜 찌그러진 움막집에 오신거야. ‘세상에 여기까지...’ 싶었지. 부뚜막을 밟고 올라오셔서 장롱위에 먼지 같은 것 있나 보시고, 이불 호청 깨끗이 빨아 넌 거 보시고, 양은 솥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은 것 보시더라고. 그리고 주신 말씀이 ‘산 소망’이야. 저기서 맨 위에 있는 성경책 좀 가져다줘. 전에는 다 기억했는데.”



성경책을 펼쳐서 돋보기로 보신다. 1975년 첫 심방 말씀. 벧전 1장 3절이라고 씌어 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성경 찾아보느라 생긴 틈에 방안을 둘러보았다. 문갑 위에 성경책과 구속사 사관학교 메달 9개와 ‘대한민국 근현대사’ 과정 수료 메달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교회에서 받은 공로패들도 있다. 2004년 권사 임직 기념 사진이 남들 결혼식 사진만한 크기의 액자에 들어있는데 정작 본인은 사진에 없다. 마르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이 이미 사진을 찍었다고. 특별한 날에 찍은 사진들은 다 교회의 기념일들(평강의 날)이다. 침대가에는 「참평안」 1월호와 「휘선 특별호」가 놓여있다. 온통 교회와 말씀에 둘러싸인 방이다. 드디어 신상정보와 신앙생활 시작에 대해 질문을 했다.


“1926년 1월 10일 생이야. 교회 등록은 1973년 5월 23일로 기억하는데 확실치는 않아. 서른 살에 혼자 됐지. 남편은 서른 여덟에 갔어. 팔자 세다는 소리가 왜 안 나오겠어. 아들 둘, 딸 둘 4남매 데리고 사는데 시누이는 내 얼굴보면 자기 오빠 보냈다고 싫어했어. 원로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큰 딸이 시집을 가면서야. 사부인이 교회 가자고 했어. 내가 우리 오라버님들도 다 교회에 나가는데 정직하게 하는 것도 없고 속여 먹으려고 해서 나는 교회 나가는거 좋지 않다고 했어. 그러니까 사부인이 여기 나오면 말씀이 정말 좋고 그 목사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당시 신림동에 있던 우리 교회에 가게 됐지.”


김계남 권사는 교회에서 ‘마르다 칼잡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갖고 있다. 일석교회 시절부터 교회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김장하고,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아 얻은 별명이다. 마르다 식당 봉사하다 은퇴하기 전까지 식당에서 칼질을 했다. 평생을 교회에 충성했던 김 권사님을 2008년 8월 6일 평강의 날에 박윤식 원로목사님이 특별히 불러 상장을 써주셨다. 상장 문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 삶은 오직 주인만 아는 삶이었다. 90세이던 2015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때는 이승현 담임목사에게 40년간 평강 성도의 밥을 챙겨준 공로로 공로상을 받았다.


“원로목사님께서는 성도들을 정말 자식처럼 끔찍하게 사랑하셨지. 나도 그런 사랑을 받았어. 교회 주방에서 쓰는 행주에는 균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늘 가르치셨고, 수양관 공사할 때는 식사 지어드리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찬양 한 곡하고 식사하셔. “밥이 어찌 이리 맛있나” 하시면서. 연탄불에 뱅글뱅글 돌려서 위에 것은 밥그릇에 담고 아래는 누룽지 해서 드렸어. 그 누룽지 참 구수하다 하시고 잘 먹었다 말씀하셨지. 문막 수련원 공사할때는 밥하는 곳 옆에 개울이 있었어. 그 쑥 뜯어다가 국을 끓여 드리면 “어쩜 향기가 이렇게 좋나” 그러셨어. 쑥만 보면 그 생각이 나. 울컥 울컥 뵙고 싶은 생각이 많이 나.”




평생 기도해 주고 사랑해 준 참 목자를 향한 그리움에 이야기가 눈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문갑서랍을 열어 분홍색 보자기를 가져와 달라고 하셨다. 보자기 안에는 곱게 접힌 옷들과 언제 받았는지가 적혀있었다. 일석교회에 일본 성도들 100여명이 방문했을 때 김 권사가 손님들 빨래를 비롯한 수발을 했다. 그 분들 송별회 날 받은 하얀 리본을 묶는 블라우스가 권사님 품에서 흘러내린다. 지금은 입을 수도 없는 옷이지만 옷은 여전히 곱다. 모리아 성전 건축 때 밥과 찬을 나른 공로상으로 받은 올리브색 한복도 있다. 앞치마 차고 일하는 모습만 보다가 고운 한복 입으니 너무 예쁘다고 원로목사님이 칭찬해주셨다며 또 활짝 웃으신다.


“인터뷰하자고 해서 아이고, 내 주제에 무슨 인터뷰야 거절했어. 그런데 꿈에 원로목사님이 찬란한 가운을 발목까지 찰랑찰랑 입고 지팡이를 짚고 어디서 오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그래서 나도 들어가다 깼어. 목사님께서 나한테 ‘하나님 일이 얼마나 급한데 그 정도 아픈 것 가지고 아프다고 하느냐?’ 하시는 것 같았어. 내가 한 게 뭐가 있어. 내놓을 것도 없고.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쓰실 데가 있나보다 했지. 그래서 와 달라고 한 거야.”


신명기 32장 7절에 “어른들에게 물으라” 하셨는데, 신앙의 후배들에게 어떤 당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대답은 눈물과 함께 나왔다. 가슴에서 쏟아지는 이야기에 다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손으로 차디찬 기자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는 정신이야. 교회 정문에 발을 딛는 순간 나무를 쳐다보며 생각해. 젊고 청청한 나무가 우뚝하다가 이제는 져서 고목나무가 되었구나. 시들어가고 잎은 말라서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서 떨어지면 이 사람 밟고 저 사람 밟고. 그 속에는 신앙도 믿음도 말씀도 다 들었지만 누가 알아주는 사람 없어. 그래도 뿌리는 동서사방으로 내려서 태풍이 와도 흔들리지 않아. ‘하나님 아버지, 저 어디로 가오리까. 뿌리는 잘 내렸는데 잎이 무성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너무나도 불쌍한 이 자식 어떻게 하오리까. 이 믿음과 말씀을 다 어디다 전하오리까.’ 하는 심정이야.


제일 급한 소원은 자식들 믿음으로 살게 하는거지. 자식들이 교회 잘 나와서 직분 받으면 더 이상 뭐가 좋겠어. 그렇지만 더 큰 소원이 있어. 구속사 시리즈 10권이 아직 안 나왔잖아. 내 욕심은 10권, 11권, 12권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나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그 메달이라도 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보여야지. 강의 교재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출석해서 도장 찍으면 되니까. 그거라도 해야지. 어디서 놀다 그 메달도 못 받았냐 하실까봐. 그 욕심을 내가 부려. 그 소망을 가지고 내가 살아.


나를 장수하게 하신 이유? 그건 첫째는 전하라고 하시는 거야. 시시때때로 「참평안」지와 주보를 전철에 꼽아. ‘이거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게 해주세요. 아버지 눈동자같이 보살펴 주세요.’ 기도해. 한번은 꼽아놓고 앉아 있는데 한 사람이 와서 주보 뽑아서 읽는 거라. 주보도 보고 나중에는 남선교회 주보 ‘오벧에돔’도 가방에 넣어 가더라고. 내가 얼마나 감사한지. 이거만 봐도 나보고 전도하라고 하시는 구나. 그래서 이 마음 주셨구나. 전도의 비결도 이거구나. 아버지 감사합니다.”


김계남 권사님을 가까이서 지켜 봐온 교구 총무 지준수 권사가 입을 열었다. “권사님은 우리 교회의 전설이에요. 저는 권사님을 취재한다고 해서 너무 기뻤어요. 여러 절기와 계기에 교구에서 하는 헌금에도 절대로 빠지시는 일이 없어요. 2015년에 교회와 공로상과 상금 100만원 받으시고는 저를 부르셨어요. 봉투 봉투 갈라서 십일조, 신년감사헌금, 여선교회 감사헌금, 권사회 감사헌금, 여러 목사님들에 대한 감사의 봉투를 다 담아드리셨어요.”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까.

“그 때 그렇게 하고 20만-30만원 남았어. 그거 두고 “원로목사님 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쓸게요.” 했어. 교회에 드리는 헌금은 기본이야. 기본은 지켜야해. 기본도 안 지키면서 믿는다고 다녀서는 안 되잖아. 어렵게 살면서 모리아 성전 지을 때는 드릴 헌금이 없어서 남의 집 식모살이로 100만원을 벌어 헌금했어. 원로목사님께서 아시고 너무 많다며 반은 돌려주셨지.


지금 바라는 것은 교회 근처 살고 싶은 것뿐이야. 가까운 곳에 하나님이 방 하나 주셨으면 싶어. 성전 문턱만 밟아도 순교인데 길바닥에서 쓰러져서 죽게 하시지는 말아 달라고... 마르다 식당도 권사실도 내가 수십 년 봉사한 곳이지만 노인네를 교회에 혼자 재울 수는 없다고 해. 할 수 없이 교회 앞에 잡곡 장사하는 분에게 수요일이면 하룻밤 재워달라고 해서 수요예배 드리고 거기서 잔 뒤 다음날 목요예배 드리고 집에 가길 2년을 했나봐. 올 해 신년 특별 새벽예배 때 집이 먼 사람들 자라고 교회에서 안나 성전을 개방해주셨지. 그런데 새벽예배 끝나면 다들 집에 가니까 그 넓은 데가 냉방이 돼. 어디 갈 데가 없어. 그래도 엘림 식당에서 2000원에 비빔밥을 주니까 먹고 오류동역에 왔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눈앞에서 닫히면서 내가 뒤로 나가 떨어졌어. 그때 쓰러져서 여태 못 일어 난거야. 교회에 가고 싶어”


김계남 권사님에게 이미 보이는 세상은 흐릿해졌다. 그토록 가고 싶은 교회. 아니 살고 싶은 교회가 평강제일교회이다. 어서 건강하게 회복되어서 이 평강의 보배 같은 권사님이 다시 교회에 오실 수 있기를. 그 오는 길이 더 이상 고단하지 않기를, 예배 때 마다 야베스 성전 앞에 서있는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의 손을 다시 잡아주시기를, 그 따뜻한 손으로 우리 얼굴을 만져주시길 기도한다.


글_ 강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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