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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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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배우는 교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이학재 교수)
 글쓴이 : 관리자
 
 

이번 달 평안인터뷰는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복음적, 보수적 학풍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개신대학원대학교의 이학재 교수를 만났다. 한국 기독교계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 인간적 해법 대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원론(原論)의 외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학재 교수는 국내 신학계에서 실력파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소장(少壯) 학자다.
대담 : 호준석 참평안 편집팀장 (YTN 앵커) 

개신대학원대학교는 연구중심 대학으로 학문적 명성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학교가 소속된 개혁교단은 1979년에 한국 장로교의 3대 교단 중 하나인 합동에서 분리돼 나왔습니다. 대형 교단들은 몸이 크다 보니 개혁하기가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옳다고 판단해도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 저런 목소리들이 나오니까요. 저희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옳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몸통이 크고 정치논리가 작용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미래로 갈 수 있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저희 학교의 근본적인 강점은 학교 캐치프레이즈에 나와 있는 대로 ‘살리는 신학, 살아 있는 목회’입니다. 대형 교단은 기본적으로 크리티컬(critical, 비판적)합니다. 좋은 면보다는 신학적으로 잘못된 게 없는지부터 보죠.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아무리 잘해도 비판적으로 가는 분위기가 있죠. 자칫 ‘죽이는’ 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통 목회자들도 설교를 분석해 보면 소위 ‘이단성’이 농후한 경우가 많습니다. 몰아가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이단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 하고 그 사람의 전체를, 인격을 봐야 하는 겁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희 학교는 지엽적인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는, ‘살리는’ 신학을 지향합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실수도 하게 돼 있지만 우리는 신학을 통해서 살려보겠다는 것입니다.

교수진과 학풍이 국내외에서 정평이 있다던데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죠. 구약학에서는 국내에서 제일 괜찮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신약학은 아직 교수님이 한 분밖에 없어서 양적으로 좀 모자란 부분이 있고요. 신학적으로 어디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고 건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가 결단하고 발언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죠. 제가 그동안 여러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라이센스(licence, 면허)를 받기 위한 과정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신학대학이라면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워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 3장 정도만 가지고 졸업시험을 칩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목회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목사가 돼도 히브리어 성경을 제대로 읽을 리 없고, 스스로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 학교는 히브리어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적어도 구약 성경 100장 이상을 히브리어로 읽도록 합니다. 목회자 라이센스를 주는 게 아니라 실력을 쌓아 주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교육의 결과가 나올 겁니다. 저도 지금도 하루에 한 장씩 히브리어 성경을 읽고 학생들을 위해서 해설해 줍니다.

성경을 원어로 공부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무 많아요. 제가 10년 동안 손석태 전(前)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 등과 함께 ‘바른성경(주:바른성경은 한국의 복음주의적 신학대 교수들인 구약학자 20명, 신약학자 15명, 국문학자 5명이 번역해 2008년 한국성경공회가 발행한 성경이다)’ 번역에 최종 3인으로 참여했어요. 원어 성경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어서 상당히 잘 돼 있습니다.(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역 성경’은 한문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간의 번역에서 잘못된 부분을 엄청나게 많이 수정해 놓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성경’도 원어성경과 비교해 보면 뜻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외국어를 공부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대략의 내용은 전달이 되지만 하나님이 그 구절에서 강조하신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말은 분사 개념이 없고, 단어 구조도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어감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27장 36절을 보면 에서가 “야곱이 두 번째로 저를 속였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한글로는 ‘속였다’라고 번역돼 있거든요.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야콥니’라고 돼 있습니다. 야곱이 ‘내 발목을 잡았다.’는 말이에요. ‘야곱’이라는 이름 자체가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이잖아요. “야곱이 또 내 발목을 잡았습니다.” “또 내게 태클을 걸었습니다.”, 이런 의미인 거예요. 읽다 보면 너무 놀라운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매일 원어 성경을 한 장씩 읽고 해석하는 겁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원문을 읽지 않고서는 설교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문제는 결국 한국 교회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결국은 성경을 바로 못 가르쳐서 생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박윤식 원로목사님이 훌륭하다고 생각돼요.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됩니다. 원문은 필수예요.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박윤식 원로목사님이 훌륭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원어를 읽고 구속사 시리즈를 통해 해설해 놓으셨지요. 성경을 깊이 사랑하는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구속사 시리즈 5권 「영원한 언약의 약속」 추천사를 썼습니다. 거기도 나오지만 성경 원문 해석이나 말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이죠. 저하고 코드가 맞는다고 느꼈어요. 신학의 목적은 학문 자체만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하고 그들에게 삶의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그 두 가지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구속사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유익을 주는 책입니다.

구속사 시리즈 1-4권도 읽으셨습니까.
물론이죠. 1권도 읽었고, 2, 3, 4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구약이 전공이니까 어떤 내용인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5권은 아주 자세히, 오타가 있는지까지 다 봤습니다.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놀랐고, 감명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에 놀라신 거죠.
일반 목회자가 쓰기 힘든 책이고요.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책입니다. 요즘 어떤 분이 인터넷에서 구속사 시리즈를 비평했더라고요. 누가 저한테 보내줘서 읽어봤는데 보면서 ‘아, 사람을 참 인정해 주지 않는구나.’ 싶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 신학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자를 만나본 적도 있습니까.
저희 학교에서 처음 박윤식 목사님의 신학을 검증해 보자고 했을 때 고민이 있었어요. 알지도 못하고 박목사님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결단을 내렸어요. 직접 가서 예배를 한번 드려보자고요. 혼자 평강제일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어요. 그날 박 목사님이 욥에 대해서 70인역까지 인용하면서 설교를 하시는데, 한마디로 놀랍더라고요. 성도들이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진지하게 듣는 모습도 봤고요. 예배를 다 드리고 나서 “아니다. 박 목사님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결론 내렸어요. 그 다음부터 입장을 확고하게 정했죠. 나중에 박 목사님을 직접 만나서 느낀 것은 ‘남자답다, 멋있다.’ 하는 거였어요. 성도들에 대한 애정이 있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섬세하게 챙겨 주고 짚어 주시더라고요.

한국 교회가 위기 상황입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반감을 갖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을 정도죠. 더구나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원인과 해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가 너무 공격적인 목회, 전도를 해온 것 같아요. 우리한테는 좋을 수 있지만 비(非) 기독교인들에게는 반감을 사는 거죠. 기독교인들의 삶이 말만큼 따라가지 않는 것도 문제지요. 그렇지만 한국 교회의 결정적인 문제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에요. 제가 요즘 바이올린을 배웁니다. 한 학기 정도 배우면 찬송가를 연주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몇 달만 투자를 하면 결과가 나오는데, 교회는 20년을 다녀도 변화가 없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가르쳐 주는 게 없어요. 성경을 가르쳐 주는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각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라.”(마태복음 28:19-20)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구약 성경입니다. 구약이 929장, 신약이 260장, 합해서 1,189장이에요. 1,189장을 교회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보면 복음서 중심으로 했던 구절 또 설교하고,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교회가 일반 클럽 같은 느낌인 거예요. 하나님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박윤식 원로목사님 같은 스타일로 성경 단 한 장이라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경 전체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해요. 저는 요즘 시범으로 수요일에 한 장, 금요일에 한 장, 주일에 한 장 씩 성경을 연구하는 설교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성경 전체를 다 가르치는데 8년이 걸립니다. 주일에만 설교를 한다면 20년이 넘게 걸리는 거예요. 그렇게라도 목회자들이 하면 되는데 그것도 안 하고 있는 거죠.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치면 분명히 변화와 역사가 일어납니다. 프로페셔널한 목회자, 실력 있는 목회자가 돼야 돼요. 신학교도 목회자 라이센스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깊이 가르쳐야 하고요. 저는 앞으로 이 부분에서 분명히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고 저부터 실천하고 있어요. 2014년이나 2015년이면 성경 전체를 한 장씩 모두 강해하는 제 프로젝트가 끝납니다. 모든 설교를 녹음하고 있고 필요하면 한국 교회에 내놓을 작정입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시켜 아는 것입니다. 악기를 예로 들자면 악보를 읽는 데서 그치면 안 되고 악보를 보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아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고, 알고, 그 말씀으로 내 삶을 연주할 수 있어야 돼요. 성경에서 ‘안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다’인데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동침했다’는 동사가 바로 ‘야다’에요. 피상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깊이 있게 안다는 것이죠. 영적인 하나님을 아는 것은 깊이 있게 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박윤식 원로목사님에게 끌리는 겁니다. 한국 교회의 대안은 바르게 가르치는 것, 바른 열정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밖에 없습니다. 성경 본문 몇 절 읽은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하는 설교가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읽고,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삶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성경공부에 기독교인인 제 후배를 데려온 적이 있어요. 전도사님이 학개서를 깊이 있게 가르쳐주셨는데 그 후배가 끝난 뒤 저에게 “성경을 삶의 교훈으로 적용하면 되지 이렇게까지 깊이 배울 필요가 있나요.”하더군요.
비슷한 얘기인데 어느 성도가 목사님에게 “성경을 좀 더 깊이 있게 가르쳐 주십시오.” 했더니 그 목사님이 “지금까지 가르쳐 드린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더랍니다. 현대인들의 경향이 쉽고 편한 길로 가려는 것이지요.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고자 하는 열정이 부족합니다. 목회자들도 그냥 헌금 잘 하고, 교회 운영 잘되면 되지 뭘 어렵게 가르치느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어떤 목사님은 “성도들이 너무 많이 알면 내가 피곤하다.”고 말해요. 우민화(愚民化)하는 거죠.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소수를 통해 이뤄집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뤄지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시대를 못 읽고,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걸로 족하다.’고 하면 그걸 억지로 막을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 나라의 리더, 엘리트가 되려면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왜 이렇게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 분위기가 됐을까요.
말씀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 같아요. 말씀은 삶입니다. 그런데 그냥 교회에서 설교 듣고 마는 형태로 가니까 능력이 생기지 않는 거예요. 악보를 보고 실제 연주를 해보지 않으니 실력이 없는 거죠. 기도할 능력도 없고, 경건을 행할 능력도, 유혹이 왔을 때 이겨낼 능력도 없는 거예요. 내공이 쌓여서 말씀의 능력이 있는 삶이 되려면 말씀 한 구절을 읽고 고민하면서 삶 속에서 실천해 보려는 열정이 있어야 해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설교를 들어도 ‘들어본 얘기구나’ 하면서 넘어가는 거예요.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성(性) 문제에 넘어가고, 돈 문제에 넘어가는 것도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고민을 안 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박윤식 원로목사님 설교를 여러 번 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설교에는 그런 고민이 있더라고요. 목회자의 그런 열정이 있어야 성도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지식으로, 비즈니스로만 가버리고 있습니다. 성전만 크게 지으려고만 하고요. 일본의 고등학교 야구팀이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될 만큼 많다고 하지만 최정예 대표선수들을 배출하는 학교는 몇 개 안 된다고 해요. 그 선수들이 세계대회를 제패하는 겁니다.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말씀의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 몇 명이냐가 문제예요. 그런데 한국 교회는 지금 그게 너무 약합니다. 포인트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알고, 말씀으로 내 삶을 연주할 수 있어야 비로소 성도 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게 되는 것과, 그 지식을 통해서 생활과 인격이 바뀌어 나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비례하겠지만 짧은 기간만 보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저를 포함해서 그런 고민을 하는 성도도 적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겠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성경을 많이 알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잖아요. 결국 ‘지식’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런 면에서 ‘정비례’는 아닐지라도, 말씀에 대한 순수성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는 거죠. 고민하지 않는 삶은 답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하나님의 뜻은 뭘까.’ 하
는 고민이 있어야 됩니다. 저도 성경을 한 구절씩 읽으면서 엄청나게 깨닫는 것이 많거든요. 일반적으로 이해했던 말씀도 다시 읽으면 의미가 정확하게 느껴지는 것이 많습니다. ‘안다는 것’이 그냥 지식적인 앎을 뜻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 지식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진 않겠죠. 말씀을 안다고 할 때, 그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경험과 삶의 잣대 같은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얼마 전 박윤식 원로목사님이 두 주일에 걸쳐서 ‘하나님을 속이고 정직하지 못한 악인들의 최후’라는 설교를 하셨는데 “정직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사람이 악인이고 죄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돼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교수님은 처음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뭡니까.
고등학교를 미션스쿨(부산 브니엘고)로 갔어요. 채플 시간에 들은 설교와, 가지고 다니면서 읽은 포켓 성경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요. 말씀 자체가 제 인격과 삶을 바꾼다고 느꼈어요. 그러던 와중에 궁금증이 생겼지요. 목사님들이 같은 본문 구절을 가지고 서로 다른 세 가지 내용으로 설교를 하시더라고요. 도대체 누구 말씀이 옳은가 궁금했어요. 이걸 내가 알아야 되겠다 마음을 먹었죠. 20년에 걸쳐서 비로소 답을 알게 됐어요.



답이 뭡니까.

20년에 걸쳐서 안 건데...(웃음) 성경 해석에는 주관성과 객관성이 동시에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삭개오에 대한 말씀을 읽고 어떤 분은 삭개오가 내려왔다, 즉 낮아졌다는 것을 주제로 잡고, 어떤 분은 예수님이 찾아오셨으니 구원자라는 것을 주제로 잡고, 어떤 분은 삭개오가 변화했다,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해석에 있어서는 각자 다양한 포인트를 강조하는 주관성이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객관성을 가진 절대적 진리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사를 봐도 진리가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를 놓고 싸웠었죠. 결국 두 가지 다 있습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들을 수 있죠. 그렇지만 객관적 진리는 있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고민하면서 성경을 어떻게 바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 연구했고, 공부하다 보니 박사까지 한 거고, 박사 과정 마치고 나니 교수가 됐고, 그 다음에는 10년 동안 성경 번역을 하나님이 시키셨고, 그걸 마치니 이제 교회를 통해서 가르쳐 보라고 하셔서 성경을 한 장 한 장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우선 모세5경까지 ‘1189’(주: 1189는 성경의 장(章)수)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원로목사님께도 간접적으로 말씀드렸는데, 구속사 시리즈 12권을 완간하신 뒤에는 성경을 한 장 한 장 주석하는 프로젝트를 하셔야 합니다. 구속사 시리즈는 큰 틀을 잡아주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신학을 공부하고 유학까지 다녀오지만 성경을 깊이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지는 않은 게 현실인데 교수님은 특별한 사정이 있었습니까.
저는 처음에 성경 말씀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학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신학은 곧 성경입니다. 배경이나 주변 얘기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저는 성경에 대해 알고 싶어서 신학교에 갔는데 신학교에서 성경을 안 가르쳐 주고 성경에 대한 것, ‘about Bible’만 가르쳐요. 그러나 유학을 가보니 달랐어요. 유명한 학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학자들이더라고요. 우리나라 신학교에서 성경을 안 가르쳐 주는 이유는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못 가르쳐 주는 겁니다.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가 과연 성경을 진짜 알고 하는 것인
가, 본문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것인가 의문입니다.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성경을 해석해요. 본문이 보여 주는 정확한 강조점, 핵심을 찾아야 되는데 다 무시하고 그냥 한 구절만 가지고 그것 하나로 얘기를 풀어 나갑니다. 물론 그런 해석이 초신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죠. 목회자의 주관적인 영성(靈性)도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성경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의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보편타당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힘이 있고, 내 삶에 분명한 것들을 제시해 줍니다. 아는 치과의사 분이 성경에 관심이 많아서 신학 관련 서적들을 책상에 쭉 꽂아 놓았더라고요. 제가 다 치우고 성경 한 권만 연구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평강제일교회에서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헬라어와 히브리어 강좌도 열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평신도들에게 원어 공부를 새로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방법이 없을까요.
영어 성경은 비교적 원어의 뜻을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영어 성경과 우리말 성경을 비교해서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신명기 1장 33절에 “그분께서는 너희 앞서 길을 가셔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장막 칠 곳을 찾아 주시며,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는 분이시다.”라고 기록돼 있어요. 최종적인 술어(述語)가 ‘보여 주는 분이다’죠.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홀렉’, 영어로 ‘one who is walking’, 즉 ‘걸으시는 분이다’가 핵심이에요. ‘찾고’, ‘보여 주는’ 것은 그걸 수식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분이다, 우리와 동행해주신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우리말로는 ‘길을 가고’, ‘찾고’, ‘보여 주는’ 것을 병렬적인 동사로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 영어 성경에는 ‘찾고’,‘보여주는’ 것은 ‘to search’, ‘to show’로 표현돼서 문장의 의미가 살아 있어요. 유다서 1장 20-2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서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4개의 동사가 동등하게 표현된 거죠. 그러나 원어를 보면 핵심은 ’자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키되, 자기를 건축하고, 기도하고, 기다림으로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 목회자가 절실합니다
그것이 제가 평강제일교회를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겁니다. 말씀 한 마디가 천지를 갈라놓는 답이에요. 천지창조 때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잖아요. 성경은 특별계시인데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가볍게 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해서 “사랑하는 아들아!” 하는 음성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말씀은 이미 성경에 수없이 기록돼 있는 겁니다. 성경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으니까 주관적인 체험을 중시하게 되는 거예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기대로 읽어야 하는 겁니다. 저는 말씀이 표준이고, 생명이라고 믿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생명과 죽음의 차이죠. 성경은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저는 성경에 제 삶을 투자했습니다. 성경 번역에 10년을 투자했고, 지금도 제 사명은 신학교수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예요.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한 라이센스, 자격 같은 것일 뿐이죠. 말씀을 어떻게 풀어주고 해석하고 전달할 것인가가 저의 관심입니다. 수요일은 신명기, 금요일은 잠언, 주일에는 예레미야를 한 장씩 강해하고 있어요.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놀라요. 왜 이런 말씀을 깊이 있게 배우지 않나 싶은 거죠. 말씀은 홍삼 엑기스 같은데 지금 교회들이 전하는 말씀은 물 한 잔에 엑기스 한 방울 떨어뜨린 격이에요.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성도들에게 홍삼 엑기스를 줘야지요.

에스겔서가 주 전공분야라고 하던데요. 에스겔서는 종말에 대해 기록하고 있죠.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라고 보십니까.
루터는 에스겔 1장 1절부터 3절을 통해 자기가 살던 시대를 ‘영적인 포로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카톨릭 교권에 사로잡혀 있던 교회를 개혁시킨 사람이 루터 아닙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다수(majority)가 세속화로 흘러가고 있어요. 세속화는 물질과 권력 두가지로 나타납니다. 종말은 예수님 오신 때부터 오실 때까지라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이 이미 종말이죠. 저는 지금을 ‘사로잡힌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악한 것에 사로잡혀 있고, 세속화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차라리 초대교회 때 받은 핍박은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이기게 되지만 세속화는 정말 겁나는 것입니다. 돈과 향락에 취해 있다가 정신없이 넘어가고 마는 것이니까요. 교회가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사로잡힌 데서 벗어나는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이죠.
그렇죠. 성도는 실력을 보여 줘야 하고 교회는 차별성을 보여 줘야 합니다. 세상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교회에 나와도 세상과 다른 것이 없다고들 합니다. 설교 시간에 사회생활의 테크닉과 돈 버는 법, 건강에 대해서 얘기해요. 제가 지난 주 ‘정의’에 대해 설교했어요. 베스트 셀러가 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읽어봤는데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고요. 최대한 많은 것을 참고해서 정의를 찾으라는 게 결론이에요. 그러나 성경은 정의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하나님과의 관계거든요. 히브리어로 ‘체데카’, 하나님과의 분명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가 줄 수 있는 세상과의 차별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52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성경 읽기, 기도 등 기본적인 것부터 스스로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를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과 아집을 고치는 거예요. 신앙은 철저히 연습이고 훈련이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셨잖아요. 전도도, 기도도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도 밤새워 읽어봐야 하고요. 성경을 배워야 그걸 통해 훈련과 연습이 가능한 겁니다. 음식을 먹고 잘 씹어서 소화시켜야 하는 건데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물만 마시고 씹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구속사 시리즈는 예수님의 족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족보는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저도 구속사 시리즈를 통해 모르던 걸 많이 배웠습니다. 마태복음을 그렇게 깊이 있게 연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족보가 중요한 것은 신, 구약을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흘러간 이야기가 아니라 구속사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구속사(救贖史)는 네덜란드에서 1950년대,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주목받은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는데 구속사의 입장을 모르면 ‘우리도 속여도 되는구나’ 하고 엉뚱하게 해석해요.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를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겠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주겠다는 섭리를 이루셨다는 것이죠. 인간의 실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속사가 신, 구약을 연결해 주는 가장 큰 맥이에요. 이것이 없으면 성경의 연결점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박 목사님이 큰 맥을 잡으신 겁니다. 구속사를 통해 신, 구약을 연결하지 않으면 성경의 통일성, 영속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신약만 강조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구약 성경은 읽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이 이스라엘 남북조 왕조의 왕들까지 외우는 걸 보면서 놀란 거예요. 신학생들보다 낫다고 생각했어요. 성경의 맥을 잡아주는 중요한 지식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만 손해인 거죠.

끝으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주시죠.
제가 보는 평강제일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미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인정을 받고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더군요. 앞으로 평강제일교회가 한국 교회 전체가 인정해 주고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말씀의 큰 흐름을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교역자들, 평신도들 모두 준비를 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역사는 일어나거든요. 그런 날을 기대하면서 조용히 실력을 쌓아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글_호준석 기자, 기록_문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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