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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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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부르셨다
 글쓴이 : 관리자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부르셨다

고전 15:8-11, 시 1:1-6


고열 속에 무덥습니다. 4박 5일 동안 내 마음대로 편하게 지낼 수도 없습니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벌레도 많고, 물도 귀하고, 땀띠도 납니다. 그러나 올해 푸른동산교회연수원에서 은혜 받는 가운데 육의 생각은 추호도 갖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건물도 없고 땅바닥에서 고열이 올라오는 이곳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노아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죄악을 물로 심판하신 뒤 봄,여름,가을,겨울과 심음과 거둠이 끝날까지 계속된다고 하셨습니다(창 8:22).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은혜를 전합니다. 무쇠도 녹이는 용광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부르셨다면 이 더운 하계 대성회에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해결 안 된 모든 난(難)문제가 깨끗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 받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시간에 우리를 다 부르실 때까지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중에도 ‘특수 은혜’는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용서 받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또 ‘영생의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산다는 그 소망의 은혜를 생각할 때 말로 다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시 116:12).


히스기야 왕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할 때는 나라 전체가 평강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교만의 악신이 들어와 은혜를 잊어버리자 하나님께서 온 나라와 모든 백성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뒤늦게 히스기야가 깨닫고 회개하자 다시 원상회복돼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사 왕도 39년 동안 계명을 준수할 때는 나라가 부강했습니다. 그런데 교만해져서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들자 하나님께서 발병을 주셨습니다. 죽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고 주신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의 종들을 가두고 은혜를 다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햇수로 3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셨습니다. 마침내 죽음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대하 16:10-14).


기도할 때 은혜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십니까? 늘 하나님 앞에서 눈동자가 흐려지지 않고 떠나지 않고 살아왔습니까? 하루에 성경을 몇 장이나 읽었습니까? 전심을 다해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기도를 몇 시간이나 올렸습니까?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 붙어사는 인생들은 소리쳐 봐야 80-90년 밖에 못 삽니다. 한번 났다가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은 대로, 믿는 대로,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히 9:27).


육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5-17). 여러분이 은혜 받고, 성령 받고, 세례와 성찬 예식도 했는데 육의 생각이 여러분을 완전히 떠났습니까? 기독교는 ‘사실’과 ‘실제’에 입각한 종교입니다.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실제’도 없이 사람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훔치는 잡(雜) 종교가 아닙니다. ‘들은 예수’, ‘글로 배운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했다”(고전 15:3)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집집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 육의 생각이 완전히 떠나지 않습니까?


선물로 주신 아들딸들에게 정확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가르쳤습니까?(신 6:1-9) 신앙생활 하면서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보좌(白寶座)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거짓말로 예수님을 믿지 마십시오. 육신의 아버지도 생선을 달라는 자녀에게 뱀을 주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구하면 주십니다(마 7:7-12). 그런데 어떻게 구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마치 한약 달이듯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더욱 힘을써서, 애쓰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뼈와 뼈끼리 부딪치는 모든 세포가 파괴될 정도로 기도하셨습니다(히 5:7). 할 일 다 하고, 먹을 것 다 먹고, 쉴 것 다 쉬고, 잘 것 다 잔 뒤 배부르게 기도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신 결과로 우리는 그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보혈이 아니면 죄 사함을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피는 죽은 피, 말 못하는 피입니다. 믿음으로 제사 드리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도 땅이 용납하지 않고 호소했는데(히 12:24)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뿌린 예수님의 피는 어떤 죄든 단번에 사함 받는 구속(救贖)의 은총을 주십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갈 1:15).


사도 바울은 그 부르심의 응답자가 된 사람입니다. 눈물 없이는 그의 삶을 돌아볼 수 없습니다. 전도하다 매를 맞아 몸이 퉁퉁 붓고 살이 터지고, 돌에 머리가 터지고, 복음 때문에 배고프고, 오해받고, 가는 곳마다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부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감옥 안이 ‘예수 안’이라고 믿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의 축복을 받아 개인과 가정과 사업에 모든 어둠의 부조리가 싹 달아나는 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심히 모일 때 은혜가 됩니다.

겨울에 화로가 다 타고 꺼져도 부지깽이로 뒤져 보면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그 불씨들을 한데 모으면 다시 열이 나고 불이 타오릅니다. 은혜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목사님을 중심으로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은혜 받으러 가자!’ 하고 모일 때 이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오만해졌을 때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 때 사무엘 선지자가 “전심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했습니다(삼상 7:3). 그러자 백성들이 모여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블레셋 군이 다 달아났습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와 센사이에 돌을 놓고 ‘에벤에셀’(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이라고 칭했습니다. 우리 성도 전체가 에벤에셀의 축복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를 이 무더위 속에 오라고 하더니, 내가 여기서 에벤에셀의 축복을 받는구나. 여기서 나를 도와주셨구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사모할 때 은혜가 됩니다.

세상에서 연애를 할 때도 남녀가 ‘미쳐야’ 합니다. 갖고 싶은 물건도 완전히 ‘미쳐야’ 내 소유가 됩니다. 아주 그립고 사모해야 일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 인간들이 영원한 축복을 받는데 적당히 해서 되겠습니까. 영원한 축복은 임시변통의 복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복은 근심 있는 복, 들어왔다가 얼마 안 돼 도망가는 복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는 근심이 없습니다(잠 10:2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어서도 범사에 복을 받았습니다. 만사형통의 복이었습니다(창 24:1, 창 12:2). 만사형통의 복은 믿는 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복입니다.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의 얘기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혀를 금하라 하셨습니다. 무슨 무익한 말을 해도 그 말로 정죄 받고 심판 받는다 하셨습니다(마 12:36-37). 교회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말씀만이 충만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그리워하고, 예수님만 사랑하는 교회. 그런 교회가 부흥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 107:9) 썩어버릴 육신보다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요(富饒)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영육이 모두 강건해집니다(요삼 1:2). 아이를 낳을 수 없던 여인,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보십시오. 제사장들까지도 ‘술에 취한 여자인가’ 생각할 정도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삼상 1:10-18).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돌아봐 주셨습니다. 생각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을 낳고, 그 뒤로도 세 아들과 두 딸을 얻었습니다. 그 한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안에도 많은 부조리,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자녀들이 속을 썩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손꼽는 명문대를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교회를 우습게 여기는 자녀가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큰 돈을 들여 유학 보내고 학원을 보내면서도 그만큼 성경을 가르치는데 투자한 적이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믿는 자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보면서 각성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교회를 내 부모,남편, 아내, 자식 이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는 쇠와 나무와 유리로 지어진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성소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며, 공경의 대상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목욕하고, 손 씻고, 양치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읽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영혼들을 위해 깨끗이 목욕하라고 레위기에 기록하셨습니다. 갈 데 못 갈데 다 다니고, 만질 것 못 만질 것 다 만져본 뒤에 좀 여유 있으면 ‘슬슬 성경이나 한번 볼까?’ 해서는 안 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인데 그렇게 해서 내 개인의 문제, 집안의 문제가 해결 되겠습니까? 믿고 구하면 준다고 하셨습니다(마 21:22, 막 11:24). 간절히 구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반드시 실행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2001년 8월 6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나같은 것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침에 눈 떠서부터 분초도 놓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쓸 데 없는 생각에 몰두해서 시간을 잃고 육신은 피곤하고, 그러다 성경 읽을 시간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면 그 날은 0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원어에는 “기회를 사라!”고 하신 것입니다(엡 5:16).


피가 흘러나오는 혈루증을 12년 간 앓은 여인을 보십시오. 그 여인이 예수님을 사모했다는 말이 성경에 씌어 있지는 않지만 간절히 사모하는 믿음이 없었다면 예수님 앞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예수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 순수한 믿음, 진실한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 여인과 같이 사모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만나기만 하면 낫는다’는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무더운 고열 속에 연수원에 오신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다시 기다려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천막에서든, 땅에서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소원이 무엇이냐 물었을때 “갑절의 성령을 주소서” 하고 소원하고 애원할 때 하나님께서 갑절의 영을 주시지 않았습니까(왕하 2:9-10). 우리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응답받아야겠다는 각오로, 진실되게, 거짓없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에서 탈선하게 하지 말고, 힘찬 기차 화통같이 천성(天城)을 향하여 달려가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찬송할 때 은혜가 임합니다.

찬송이 뜨거운 교회는 부흥이 안 되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자세로 찬송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가사가 말하는 뜻을 그대로 알고 깨닫기 위해 불러야 합니다. 자신이 가사대로 되길 원하면서 몸부림치며 불러야 합니다. 믿음은 활활 타오르는 영혼의 불길과도 같습니다. 나무에 불이 제대로 붙으면 연기가 나지 않지만 냉과리(잘 구워지지 않아서 불을 붙이면 연기와 냄새가 나는 숯)는 자기도 못 타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눈을 못 뜨도록 쓰라리게 합니다. 믿음으로 찬송을 부르면 옆에 있는 분들까지 알게 모르게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불길이 옮겨 붙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면 모든 부조리가 다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 암몬,모압,세일의 연합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① 하나님을 신뢰하라, 믿고 의지하라 ②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신뢰하라 ③ 성가대 옷을 깨끗이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가대를 앞장세워 드고아의 골짜기를 향해 찬송하며 나아갔습니다(대하 20:20-25). 그러자 하나님께서 세 나라 연합군을 완전히 섬멸하셨습니다. 전리품을 나흘에 걸쳐서도 다 못 가져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골짜기의 이름이 ‘송축의 골짜기, 찬송의 골짜기’(브라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에 이곳에 왔다 간 흔적을 믿음의 찬송으로 남기십시오. 의심 말고 믿음으로 찬송을 불러서 그 내용대로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이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잠시 찬송가 502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왜 은혜를 주십니까? ‘의논하자, 상담하자’고 주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상담하자고 하십니다. 양털 같이, 흰 눈 같이 희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사 1:18). 회개하는 자의 죄는 사해주십니다. 이번 기회에 과거에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철두철미하게 회개하고 용서받아 마음에 생수가 강같이 흐르는 체험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만 시편 1편 말씀대로 죄인의 길에 서지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나무가 시냇가에 뿌리 박듯 하면 가뭄 때도 청청하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모든 생활이 형통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은 형통의 복을 생각해 보십시오. 금은 보화를 주체 못할 정도였습니다(창 24:42,56, 창 24:35). 우리도 그런 형통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종일 고생해도 겨우 입에 풀칠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이맛살 찌푸리고 손이 거북이 등같이 두터워지며 제대로 못 먹고 못 입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살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애 3:33).


그 문제를 이번에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선풍기 있고 에어컨 있는데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비천한 데 처할 줄도 알고’라고 했던 사도 바울을 닮아 시궁창에서도, 모기가 물어도, 더운 데서도 기도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짜증을 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70세가 넘은 노구로도 장막을 꿰매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데려다 밥을 먹이며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눈물 없이는 사도행전 28장을 볼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영혼이 잘 되려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보낸 종들을 잘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하지 마시고 기분대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보낸 종을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라고 역대하 20장 20절에 기록돼있습니다. 교회에 대해 소홀했던 것, 감사하지 않은 것, 십일조마저도 떼어 먹은 것 모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주시고, 열 개 중 하나만 하나님 사업에 쓰라고 하신 것인데도 이것이 제 돈인줄 알고 집에 놓아두면 도둑질한 물건이 집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물건이 집에 있는 재산을 다 끌고 나갑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잠언서에는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이 없다”(잠 28:13)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죽어도 외어둬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다 떠들어도 죄를 숨기고 내어놓지 않으면 잡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잡풀은 누가 가꾸지 않고 거름을 안줘도 멋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욥은 “죄 없이 망한 자 누구냐”고 했습니다(욥 4:7). 죄가 있으면 하루살이한테도 밟혀죽는다 하셨습니다. 고귀한 인생, 보배로운 인생,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가 하루살이에도 밟혀 죽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것을 찾으십니다(눅 15장). 양 백 마리 가운데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서라도 잃어버린 하나를 찾으러 다니는 목자의 심정이 그 분의 심정입니다. 돈 열 드라크마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온 집안을 쓸고 닦으며 찾으십니다. 두 아들 가운데 집 나간 탕자를 매일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하나님은 죽음의 그림자도 없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딤전 6:16), 부활하신 뒤 승천하시면서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하시며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도무지 인간의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이처럼’입니다.


잘 믿을 때 형통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정말 잘 믿을 때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을 때 형통이 눈 내리듯 했습니다(왕하 18:1-7). 나라가 하나님과 24시간 떨어지지 않고 딱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계명을 범하지 않고 그대로 가르치고 행했습니다. 가난한 백성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죄가 가려서 내려오지 못합니다(렘 5:25).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키고 믿으면 나가든, 들어오든, 어느 나라에 가든 하나님의 형통이 따라 다닙니다(왕상 2:3).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 시위대장의 집에서 종 노릇 할 때도 그로 인해 시위대장의 온 집이 복을 받았고, 오해를 받아 옥에 갇히자 옥사장에게까지 은혜를 끼쳤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멋있는 말씀을 했습니다.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고, 40대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 던지우고, 동족과 강도와 시내의 위험에 시달리고,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춥고 배고팠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했다.”는 것입니다(고전 15:10). 여러분도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다” 하는 고백만 있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이 알아주지 않는다,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며 다른 데 가고 싶다고 하지 마십시오. 시험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알아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부르셨다면 “나를 왜 부르셨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은혜가 나를 부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 되셔서 이 땅에 오실 때 은혜와 진리로 오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의 자본입니다. 믿음의 근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의 주’(히 12:2)라고 하셨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가슴 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장본인입니다. 은혜 받은 우리 성도들의 가슴에서부터 간증이 나오고 증거가 나와야 합니다. 은혜와 믿음이 부부처럼 하나가 될 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겉사람도 성령을 따라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해주셨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지저분해지는 우리를 하나님은 청소하시기 바쁩니다. 밤잠을 자지 못하시며 날마다, 시간마다, 분초마다 우리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그 은혜를 모르고 ‘내가 잠 못 자며 애쓰고 노력한 덕분에 잘 사는 거지. 누구 도움 받을 필요 없어’ 해서는 안 됩니다. 삼가고 조심하십시오. 느부갓네살은 “내가 이 천하를 만들었다”고 자랑할 때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당장 저주가 내려왔습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혀를 금해야 합니다. 남 얘기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할 얘기가 없습니까. 그 분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이 아니라면 말을 하지 마십시오. 왜 입으로 죄를 짓습니까. 자기 눈에는 대들보가 들어있는데 못 보면서 남에게 조그만 먼지 묻은 것 가지고 야단을 떱니까.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왜 심판을 합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은 내가 갚겠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의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신을 차리십시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살후 3:2). 몇 십년 믿는다 하지만 진짜 믿음이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 보십시오. 믿음이 있다면 생활이 다릅니다.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믿는 자는 믿음으로 모든 일을 시작합니다. 믿음으로 진행하고 믿음으로 결과를 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다 가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부르셔서 그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들어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영,혼,육이 주님 재림할 때까지 흠이 없도록 보존시켜 주십니다(살전 5:23). 성령님이 인(印)을 쳐서 흠이 없도록 보증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엡 4:30),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라(살전 5:19)고 하셨습니다. 은혜 받으면 마음에 근심이 없어집니다. 기도할 때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해 주십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매사가 어지럽고 시끄럽고 귀찮습니다. ‘나 같은 게 기도하면 응답 주실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요 14:13-14).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머물러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응답 주실 줄로 믿습니다(요 15:7).


말씀이 우리 가정의 가보 1호가 돼야 합니다. 재산 목록 1호보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 나의 모든 것이 돼야 합니다.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받아들이십시오. 목사님들 설교 잘 할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 드리십시오. 밥도 어떤 날은 타기도 하고 설 익기도 합니다. 목사님들도 사람입니다. 설교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감사하고, 목사님의 설교가 많은 영혼들을 살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고, 육신적으로도 도와줄 때 그 교회는 부흥됩니다. 그런 교회에는 사람 냄새가 없고 잡소리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받지만, 또 주는 것입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을 이루듯이 주고 받음으로 힘이 생깁니다.


사람이 은혜의 단비를 받으면 싹이 틉니다. 교회에 은혜 받은 분들만 있으면 그 덕분에 많은 분들이 덕을 봅니다.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고 초록색으로 푸르게 우거지면 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사람들의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출처는 하나님의 가슴 속입니다. 하나님의 가슴은 우리를 향하여 늘 뜨겁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으려 하듯 우리를 품으시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믿음의 자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깁니다(롬 10:17).


믿음의 근본은 마음이 가난한 것입니다. 마음이 부자가 되면 자기가 주인 노릇 합니다. 마음이 가난해야만 합니다.


믿음의 행동은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yes)가 되나니 우리는 ‘아멘’하고 고백해야 합니다(고후 1:20).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과 인격성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우리가 이 말씀을 애독하고 사랑하지만 참으로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있다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팔다리가 불편하고, 구걸하는 걸인을 그냥 쳐다보고 가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구속(救贖)해 주신 이유는 우리가 선한 일에 힘쓰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딛 2:14, 딛 3:8, 엡 2:10). 선한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그 분들 위해서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내 자식 서울대 보내기 위해서는 새벽에 간절히 기도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내 자식처럼 같이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불쌍한 자, 가난한 자 못 본 체 하는 사람은 저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잠 28:27). 내 주머니에서 가난한 사람 위해 5만원, 10만원이 나가면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꾸었다” 하십니다(잠 19:17). 하나님이 꾸셨으니 여러분에게 수천만만 배로 갚으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시내에 나가면 불쌍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순간적으로 사람 생각으로 천 원 짜리 한 장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제 양심에 ‘이 녀석아, 너 천 원 가지고 짜장면 한 그릇 사먹을 수 있느냐’ 하십니다. ‘주여, 은혜가 나를 부르시는데 순간 제가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나를 죽을 자리에서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시고, 선한 일에 힘쓰는 백성이 되길 원하시는데 제가 인색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고 회개하고 만 원 짜리를 드립니다. 지하상가 계단을 내려갈 때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불러서 의논하자고 하십니다. 의논한 결과, 죄를 숨기면 형통이 없으니다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회개하지 못한 죄 철두철미하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아무리 무덥고 힘들어도 말씀 받는 곳은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물으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 내가 날아갈 지경이야. 하나님의 은혜가 부르셔서 구름 덮개가 우산같이 나를 덮고 있으니 걱정 마라. 돈 주고도 못하는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면서 내 모든 질병이 빠져나가고 있어.”하고 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부르셨으니 끝까지 응답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1. 8. 6 하계 대성회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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