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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글쓴이 : 관리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눅 12:13-21


예수님께서 재산상속 문제 때문에 찾아온 질문자에게 주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 가운데 누가복음에만 기록돼 있습니다. 물질에 몰두한 나머지 감사가 메마르고 인색하여 영혼과 생명의 귀중성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비유입니다. ‘오늘 밤’을 잊어버린 이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의 결론은 “탐심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은 우상숭배의 죄에 해당합니다(골 3:5). 하나님이 아닌 물질로 신을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그 질문자의 집안에서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아마도 형이 율법에 기록된 상속에 대한 말씀을 무시하고 다른 동생 것까지 차지한 것 같습니다(신 21:17). 질문자는 예수님께 “선생님, 내 형에게 명령해서 재산을 나누게 해주십시오.”하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누가 나를 너희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표준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재산이 차고 넘쳐도 여러분의 생명이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 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오늘 밤’이라는 시간을 모르고 살다가 영원히 불행에 빠진 인물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은 고유한 인격의 대명사인데도 말입니다. 그저 ‘한 부자’라고만 돼 있는 그는 7번이나 반복해 스스로 “나”를 강조합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소출”, “내 곳간”, “내 영혼”, “내가 먹고 즐기자”. 한글 개역성경에는 7번, 헬라어 원문에는 10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직 ‘나, 나, 나’인 것 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지막 이름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슬기롭지 못한 것, 행동이나 판단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상태, 우둔하고 우매한 것, 재미 없는 자, 마비된 바보, 사악함, 신앙심 없는 불경건한 자, 파렴치한 자, 심술궂고 지독한 자를 뜻합니다. 모든 생활에 ‘나’ 밖에 없는 인생의 최후는 ‘오늘 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찾아가면 그 많이 준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눅 12:20) 하나님께 부요(富饒)하지 못하고 자신에게만 부요한 사람의 결말이 이와 같습니다.




오늘 밤을 잊어버린 자는 자신을 잊어버린 자입니다. 인생의 참 본질을 깨우쳐 주는 소중한 비유입니다. ‘한 부자’는 크게 착각하고 살던 자입니다. ‘착각’(錯覺), 섞일 착, 깨달을 각으로 ‘잘못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 등 각자의 위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잊어버리고 살면 부모도, 형제도, 윗사람도 없고 오직 ‘나’만 남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오직 나입니다. 무섭습니다.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완전히 자신을 잊어버린 자입니다. 풍성한 소출과 재물이 다 자기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마음에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고민했습니다.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자기 영혼을 향해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합니다. 하나님 것인 영혼조차 자기 것인 줄로 알았습니다. 자신도 잊어버렸으니 하나님도 믿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 사업도 안 했습니다. 차고 넘쳐도 단 한 번 나눠줄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풍년을 만나 소출이 너무나 많은데도 같이 일한 사람들 불러서 멍석 펴고 밥 한 끼, 국 한 그릇 대접하는 법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도 없었습니다. 그의 욕심은 한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지옥에 가도 모자랍니다. 이 지구에 다 쌓아 놓아도 만족이 없을 만큼 끝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그날 밤의 일을 몰랐습니다. 소출의 관리를 계획하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일을 생각하며 잠시 행복을 느꼈을 것 입니다. 돈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나는 그렇지 않아’ 하고 안하무인이었습니다. 그저 곡식 쌓아둔 창고만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거기서 모든 행복을 찾았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이 행복의 전부인 인생, 참으로 불쌍합니다. 자기 혼자 먹고, 자기 혼자 마시고, 자기 혼자 입고, 자기 혼자 즐기는 인생입니다(사 22:12-14).


성도 여러분. 부모가 자녀들에게 “너희들 부모 잘 만나서 이렇게 잘 사는 줄 알아라. 이렇게 좋은 집, 좋은 차 갖게 된 것 부모 덕인줄 알아라” 하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순간 하늘에서 그 말을 기록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내팽개치고 그 자리에 부모 이름을 넣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단 4장). “이 모두가 우리 조상부터 예수님 믿고, 교회 세우는 데 헌신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줄 알아라” 하고 자녀에게 가르쳐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결국 부자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물질뿐 아니라 영혼까지 본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회수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불쌍한 부자를 가리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눅 12: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시 14:1-7, 시 53:1-6). 사도 바울은 이런 이들을 향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롬 1:21)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인데 누구한테 바치느냐며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이들, 교회 나오면 목사님 피해서 구석에 앉았다 가는 이들, 교회 나가면 양심이 찔리니 결국은 교회에 안 나가는 이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롬 1:28)라고 했습니다.


천상천하, 우주만물 가운데 인생의 참 보배는 오직 예수님입니다(벧전 2:7). 살아 봤자 70.80년인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보배를 주셨습니다(벧전 2:4). 예수님 앞에 나아와 믿고 회개만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어떤 죄든 다 사해 주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감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사 33:6)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이 보배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가치성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 11:6)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여러분이 보배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여러분을 살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이라는 최고의 보화를 얻는 것입니다(롬 1:16-17, 행 16:31,엡 2:8).


성도 여러분. 예수님 믿는다는 성도가 십일조를 떼어먹으면 도둑입니다. 만사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고 그 중에 1/10만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써달라고 당부하시는데 그 하나마저도 도둑질한다면 매사에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말 3:8-9). 우주만물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은 근본입니다. 태초의 말씀 자체입니다. 그분께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아무리 재물이 아까와도 하나님의 ‘하’자만 나와도 다 드릴 수 있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개인과 가정은 자손만대에 망하지 않고 천천만만의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집에 백만 원이 있다면 거기서 천배를 곱하고 다시 천배를 곱하고 또 만을 곱하고 만을 곱해 보십시오. 계산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천천만만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요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의 복을 주시되 근심과 겸해서 주시지 않습니다(잠 10:22, 신 8:17-18).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모든 삶에 부족함이 없습니다(시 34:7-10). 이런 복을 주신다는데 하나님께 대하여 부자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하고 부르는 기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멀리 떠나십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십니다(신 4:7). 성도라고 하면서 하루에 하나님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참으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어떻게 아침에 눈 떠서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까.


진짜 부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부요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어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롬 5:8). 이것을 깨닫고 감사하고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천상천하에 영원한 부자입니다. 이렇게 하늘에 쌓아두는 하늘 저축법을 어리석은 부자는 몰랐습니다(마 6:19). 남에게 선한 일 하고 도와주는 것은 하늘에 저금해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누구 도와주고서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얼마 줬지” 하지 마십시오.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하늘에 저금한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자기 마음이 있습니다(마 6:21).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됩니다(행 20:35). 줄 때 감사합니다. 은혜 받은 것이 있다면 주십시오. 형편이 어렵고 가난한 분들, 조금만 도와주면 형편이 폅니다. 그러면 그 분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10:8).


사탄이 ‘인류가 예수 믿지 못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길이 무엇일까’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사탄의 수법이 무엇일까요. 사람들로 하여금 ‘내일 하자. 좀 조용할 때에 차차 하자. 돈 벌어놓고 나이 든 다음에 틈이 있으면 보자’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곧’ 입니다. 즉시입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오늘밤에 하나님이 내 영혼을 찾아가실지 어떻게 압니까.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늦어도 한참 늦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보람을 느끼실 때 즉시, 곧 일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려고 밤낮 일했습니다. 자신이 밤낮으로 일해서 번 돈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살전 2:5-9, 3:8, 고전 9:12). 남에게 외상으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없습니다. 먹어도 감사, 못 먹어도 감사, 모든 생활에 자족(自足)을 배웠습니다. 굶으나 배부르나 구차한 것이 없었습니다(빌 4:11). 성도들에게도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살전 4:11, 딛 3:8,14). 일할 줄 모르면 일 잘하는 사람 따라 다니면서 배우면 됩니다. 공짜로 얻어먹으려 하지 말고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엡 2:10). 내 손으로 수고해서 선한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엡 4:28). 자기는 바치지 않고 남이 바친 돈 가지고 우쭐대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은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3-4)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사 우리 죄를 없애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기업(基業)입니다. 그런데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뉴질랜드 사람들은 ‘소망이 있다면 물에서 헤엄치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소망이 있다면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으면 가라앉고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보이는 땅의 장막집입니다.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장막집, 천국을 바라보는 것입니다(고후 4:12-18).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처소로 영접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 14:1-3).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영혼과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물질만 쌓아둔 것입니다. 어느 은행에 얼마 있고, 어느 창고에 뭐가 있고, 이 땅은 내 이름으로 등기돼 있으니 나 죽거든 너희가 가지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맙니다(시 39:4-7). 쌓아놓은 물건들로는 우리 영혼을 만족하고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행복하고 즐겁게 해줍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재물을 해(害)가 될 정도로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전 5:13)


고생해서 번 돈으로 산이나 바닷가에서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즐겁게 나누고 놀고 해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한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전 6:1-2)


명예, 권력, 다 받았는데도 먹지 않고 쓰지 않다가 병들어 죽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므로 일할 때도, 돈 벌 때도, 장사해서 이익 남길 때도, 급료를 받을 때도 다윗 왕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하시기 바랍니다(대상 29:14- ).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이 영혼을 도로 찾아가실 때 인생이 끝나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 쾌락, 내 만족만 위해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침략자의 대명사가 바로 사망입니다. 죽음한테 맥 없이 끌려가고 만 것입니다. 소리도 못 지르고 끌려갔습니다.


1923년에 미국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억만장자 9명이 시카고의 호텔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1948년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파산하고, 국외로 도망해 객사하고, 정신병자가 되고, 교도소에 수감되고, 자살했습니다. 비참하고 불쌍한 최후를 맞고 만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까?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 되도다 (전 5:10)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잠 14:13)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전 2:2)


로마 인들은 돈은 바닷물 같다고 했습니다. 바닷물을 마셔 보십시오. 더 갈증이 납니다. 돈,돈,돈 하다가 죽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 은혜, 사랑, 구속(救贖)을 깨닫게 됩니다. 어디서나 머리 숙이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사는 것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에 쌓아 둔 웃시야 왕의 금은 지금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전 세계에서 모아들여 나일 강가에 쌓아 두었던 바로 왕의 곡식은 누가 가져 갔습니까?


유브라데 강가에 쌓아두었던 느부갓네살의 황금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50년 목회하면서 수백 명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결국은 베옷 수의 한 벌 입고 갑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깨닫습니다. 사람은 적신(赤身)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갑니다(딤전 6:7,17, 욥 1:21, 시 49:17, 전 5:15).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입니다. 재물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딤전 6:17).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마음에 모시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하나님 말씀만은 꼭 껴안아 가슴속에 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십자가 피만 붙잡고, 하늘나라에 당당하게 입성하는 평강교회 전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고전 7:31)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대상 29:15)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종을 위해서 기도하고, 장로님들과 권사, 집사, 교구장, 구역장, 지구장님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분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 아닙니까. 우리가 괴로움과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의 진정한 구세주인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아이고, 내가 장로고 권사고 집사인데, 예수 잘 믿으려고 애쓰는데 왜 집안이 우환을 당하는가?” 할 때 예수님이 바로 그 자리에 와 계십니다. “너 왜 울어? 내가 책임질게. 나 지금 너와 같이 있어. 네가 아픈 것 내가 다 같이 해.” 하십니다(사 63:9). 영원히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괴로움을 당할 때 예수님이 이미 그 자리에 와 계십니다.


오늘 주일은 하나님 만나는 날, 믿음의 날, 기도하는 날, 찬송의 날이고, 헌신 봉사하는 날이며, 나한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주는 날입니다. 회개하고, 결심하고, 앞으로는 어영부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말씀 받을 때 집중적으로 듣겠다고 하나님께 서원기도 하는 복된 날입니다. 그 나라 갈 때까지 어리석은 부자의 반열에 서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서고, 탐심을 물리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되기를 바라는 성도가 되십시오(빌 1:20). 오늘까지 눈물과 고통과 아픔이 있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말끔히 사라지고 예수님이 모든 죄를 걸머지셨으니 그 말씀을 믿고 감사하면서 다시 분발해서 힘차게 천국을 향해서 달려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12년 9월 9일 주일 2부예배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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