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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다시 만나게 해주는 기쁨의 선물
 글쓴이 : 관리자
 

사랑은 다시 만나게 해주는 기쁨의 선물

고전 13:8-13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오늘은 복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날입니다. 주일에 교회 나와서 정성 다해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드리는 자는 자손만대에 축복이 끊어지지 않고 야곱의 업(業), 천천만만의 복을 누립니다(사 58:13-14, 시 144:13). 오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은 “사랑은 다시 만나게 해주는 기쁨의 선물”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속을 떠보기 위해 찾아와 “선생님, 율법 중 제일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물었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고, 둘째는 이와 같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답하셨습니다.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마 22:34-40).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합니까?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이 자신에게 부딪히고 자신을 강권해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면 추위에 떠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쳐선 안 됩니다. 그러나 못 먹고 못 쓰며 모처럼 코트 한 벌 장만했는데 거지가 엄동설한에 떨고 있다고 코트를 벗어 입혀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안 됐다’ 하면서 지나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셨습니다(롬 13:8). 남을 사랑하는 자가 율법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다 이룬 인간이 과연 어디 있습니까. 십계명 중 아홉을 지켜도 하나를 못 지키면 십계명 전체를 범한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이 바로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0:4). 율법을 이룰 사람이 없으니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당신의 보배로운 피로 원죄(原罪), 유전죄(遺傳罪), 자범죄(自犯罪)를 단번에 사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평생 고행하고 수행한다고 죄가 사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로 그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풀어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죄인에게 “왜 그랬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무조건 감싸주십니다. 참으로 예수님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간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목사,장로,권사,집사가 됐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면 밥 때가 되면 주머니 사정 따지지 말고 “같이 식사하자”고 권해야 합니다. 그러나 살 만한 형편인데도 밥 한 번 사는데 인색한 것이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띠를 매지 않으면 옷이 흘러내려가 수치를 드러내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부끄러움을 감싸주는 띠입니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 계산할 때 되면 차 홀짝거리며 눈치 보다가 다른 사람이 내면 그제야 따라 나가 “내가 내려고 했는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돈이 없을 때는 사정을 솔직하게 얘기해서 상대방이 마음에 죄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누가 누구와 무슨 짓을 했대’ ‘아? 그래. 난 전혀 몰랐구만’ 하며 수군대는 사람들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줍니다. 진정한 교회는 피차 흉보지 않습니다. 흉보는 얘기가 나오려고 하면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셨습니다. 99%는 사랑하는데 1%는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7-38) 하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세 가지의 사랑은 있습니다.


① 에로스(Eros) 사랑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자기 중심적, 자기 만족적, 자기 감각적, 자기 생각적, 자기 정욕적 사랑입니다. 음식처럼 기호에 맞으면 먹고 안 맞으면 팽개칩니다. 무조건적 사랑이 아니기에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결혼하면서 “당신은 뭐 해왔어? 우리 부모님에게 뭐 해 드렸어? 몸만 가지고 온 것 아냐?” 하는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내 재물과 육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로스 사랑은 이해타산입니다. 불타오를 때는 ‘당신 없으면 못 살아’ 하지만 식고 나면 버립니다. 남의 집 귀한 딸 데려가서 아이까지 낳고 살다가 이혼하겠다고 상담하러 오는 교인이 있습니다. 저는 ‘살던 여자 버리고 다른 여자한테 간다고요? 그 여자가 그 여자입니다.’ 라고 권면합니다.


② 필레오(Phileo) 사랑

친구 간의 사랑,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의 사랑입니다. 좋은 편도 있지만 나쁜 편도 있습니다. 악을 위해서도 합심, 단결하고 응집합니다. 잘못된 방향의 응집력은 좋지 못한 것입니다. 잘못하면 교도소에 가고, 집안을 쑥밭 만듭니다.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합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들을 볼 때 남의 집 얘기로만 보지 말고 자기 아들딸의 얘기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③ 스톨게(Storge) 사랑

가족의 사랑입니다. 세상에서는 가족의 사랑, 특히 모성애를 최고의 사랑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온전한 사랑은 아닙니다. 이기적인 사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내 가정, 내 부인, 내 남편, 내 자식만 챙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만을 위해 권력과 물질을 성(城) 쌓듯 쌓아둡니다. 제가 시골에서 자랄 때 먹을 것이라고는 옥수수, 고구마, 감자뿐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식한테는 토실토실하고 온전한 것을 주고, 남의 자식들한테는 작고 귀퉁이가 부서진 것을 줍니다. ‘내가 낳은 내 새끼, 내가 어떻게 길렀는데, 내 아들 내가 잘 먹여야지’ 하는 마음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사전에는 사랑이 이렇게 정의돼 있습니다. ① 존재 욕구, 소유 욕구, 행복 욕구, 발전 욕구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사물 또는 원리를 만족스럽게 또는 귀중하게 여긴다. ② 그를 위해 헌신하거나 노력하려는 의지, 또는 그를 기쁘게 하는 감정 및 기분, 강렬한 애정의 느낌, 애착 또는 자비심.


인간의 사랑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완벽하지 못합니다. 기분 좋을 때는 ‘우리 집에 와라, 같이 먹자, 같이 놀러가자’ 하지만 조금만 마음 상하면 회전의자처럼 홱 돌아섭니다. 감정에 따른 차별적 사랑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오래 신세진 것도 다 잊어버리고 오만 욕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Agape) 사랑입니다. 주권적인 사랑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세무궁토록 여전(如前)하신 분이고 연대가 다함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히 1:12). 우리가 온갖 추잡한 죄를 지은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못 본 척해 주시고 무조건 사랑하시는 일방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하신 사랑입니다. ‘이처럼’! 더 올라갈 곳이 없을 만큼 가장 많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그 사랑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아들에게 다 뒤집어 씌우셨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 죄를 지시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요 12:50). 하시고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마귀들은 피가 쏟아지니 예수님이 영원히 죽으신 줄 알았지만 그 보배로운 피가 뱀의 머리를 부수고(창 3:15)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피에 새 생명,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들어 있는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8:51). 예수님은 백번 죽으면 백한 번 살아나시는 분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변화됩니다(고전 15:51, 빌 3:20-21).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왔던 사람들이 다 죽는 것만 보며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나’ 합니다. 그러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약속하시는데 얼마나 호기심이 생깁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인류의 죄를 아들에게 지워서 죽게 하시고 “인생들아, 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내가 너를 사랑했다.”(롬 5:8) 하는 눈물겨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못난 아들이라도 동네를 위해서 아들의 목숨을 내어놓을 부모가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수염이 뽑히고 발길질, 주먹질, 채찍질을 당하신 뒤 십자가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가닥마다 짐승 뼛조각과 쇠붙이가 붙은 채찍으로 얼마나 맞으셨는지 밭에 고랑이 생기듯 등이 패였다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우리가 입이 백 개 아니라 만 개라도 하나님께 할 말이 있습니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이 떠난 교회는 가짜이고 사탄의 집합소일 뿐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당회원 된 장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주 연수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공사하는 목사님, 직원들이 식사하다 밥알 하나라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성도들이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면서 드린 헌금이기도 하거니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죄가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쌀이고 반찬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남자만 5천 명, 여자와 어린이까지 하면 2만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부스러기도 버리지 말고 다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거둔 것이 열두 광주리입니다.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신 6:5, 마 22:37)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물질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먼저 사랑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사이에 아들을 중보자(中保者, Mediator)로 세우셨습니다. 아들께서 “아버지, 이 사람이 죄 많이 짓고 살지만, 교회도 없고 전도도 못 받았고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고 친구도 못 만났으니 어떻게 합니까” 하면서 우리를 변호하고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천국에서 편안히 계시지 못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서셔서 우리를 위해 조바심 내시며 기도하십니다. ‘아이쿠, 너 또 죄 졌냐? 내가 너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렸는데. 네가 말씀 받고 은혜 받았다 한 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시시한 일에 또 시험 들고 교회 안 나가느냐?’ 하시며 애태우고 계십니다(롬 8:26, 히 8,9장, 요일 2:2, 4:10).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선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만세 전에 우리를 선택한 것입니다(신 4:37, 10:15, 7:6-7, 요 15:16). 여리고 성에 토색과 착취를 일삼던 세무서장 삭개오가 있었습니다. 수천 명이 살던 큰 도성 여리고에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예수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큰 인파가 몰렸습니다. 키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의 이름까지 아시고 부르시면서 “네 집에 유(留)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삭개오가 놀라 ‘진짜 하나님이구나!’하고 뽕나무에서 내려와 토색한 것의 4배를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셨습니다(눅 19:1-10). 모든 사람에게 미움 받던 세리조차도 예수님은 이미 그가 나기전부터 이름까지 아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수천만만의 별들도 그 이름을 각각 부르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시 147:4).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을 보십시오. 이 땅에 오셔서 사람과 똑같이 배고프시고 욕먹고 서럽고 매 맞으면서도 끝까지 참으시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히 5:7). 그 아가페 사랑을 지금도 인류에게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교회를 욕하며 “나 그런 교회 안 나가”하고 소리치고 고발까지 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너 예수님 안 믿고는 못 견딘다’ 하시면서 관심과 은혜와 사랑 속에 두시고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라도 다시 교회 생활 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말고, 죄 지은 분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본을 보여주는 평강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도, 고통과 중상모략과 생명의 위협과 매질도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롬 8:35-39). 하나님이 나를 강력하게 이끄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5:14-15). 내가 안 믿으려 해도 하나님이 사랑의 강권(强勸)으로 어떻게든 마음을 바꿔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업을 실패하게 하시든지, 어떤 여건을 만들어서라도 다시 그리스도 안으로 잡아당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이 구절을 공동번역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토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로, 표준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로 번역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뭐래도 이런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나 밥 좀 사줘라.” “내가 왜 밥을 사냐?” “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네가 누군데?” “나,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런 정도의 믿음과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노래한 고린도전서13장을 학자들은 ‘사랑의 시편’, ‘사랑의 찬송’이라 표현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한 구두 장수 출신이지만 예수님을 믿은 뒤 백만 명 이상을 전도한 선교사 무디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세계 혁명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13장은 신구약의 최고봉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헬라 사상의 영향으로 영적 은사를 남용해 혼란과 분쟁,무질서가 팽배해 위기에 처했을 때, 사도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주고, 또한 제일 좋은 길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고전 12:31). 고린도 교인들의 눈이 둥그래졌을 때 사도 바울이 한 말씀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처럼 시끄럽기만 합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견뎌야 합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사랑의 가치와 중요성, 절대 우위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 7절은 사랑의 15가지 다양한 모습, 사랑의 성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부터 13절은 사랑의 영원성, 즉 임시변통이 아니라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8절(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은 절대적 사랑의 영원성, 지속성을 말씀하십니다. 한 번 하고 마는 사랑이 아니라 ‘또!또!또!’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하다가 그만두는 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평소에는 남편 우습게 알다가 돈 가져다 줄 때만 잘해주면 사랑이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고 저렇고 간에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엡 5:28). 여자는 사랑을 먹고 삽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사랑은 다시 만나게 해주는 기쁨의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18절에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절은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영원한 사랑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예수님이 해,달,별이 되시고 모든 기후가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계 21:23, 사 60:19). 슬픔과 괴로움과 죽음과 아픔과 울음이 없습니다(계 21:4). 지금도 오뉴월 복중에 중천에 떠있는 해를 눈부셔서 쳐다볼 수 없는데 그 세계에서는 햇빛이 지금의 7배나 되고 달빛이 햇빛 같습니다(사 30:26).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가운데 계시를 받아서 한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수만의 천사와, 그리고 예수 믿는 성도와 같이 오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영광의 빛의 세마포 옷을 입히시고 들어 올리셔서 공중에서 예수님과 혼인 잔치를 합니다(마 25:1-13). 예수님 믿다가 순교당한 사람들이 영광의 자리, 첫째 부활에 참여합니다(계 20:6). 그러므로 순교의 자리가 있으면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 잘 믿다 죽은 사람들이 둘째 부활에 참여합니다. 수천만 천사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계 7장) 기왕이면 우리가 14만 4천 명, 새 노래를 부르는 그 축에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 받고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잘해서, 내가 재주가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고전 15:10). 사랑이 최고입니다. 돈 줘야 사랑하고, 선물 주면 사랑하고, 자기를 예뻐해 주면 사랑하는 조건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이 썩을 몸이 썩지 않고, 죽을 몸이 죽지 않고 변화되는 날이 옵니다. 순간입니다. 에녹과 엘리야가 그렇게 순간적으로 변화돼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산소통 메고 우주복 입고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그때는 예수님을 마주 대해서 봅니다. 지금은 “권사님” “집사님” 불러야 대답하지만 그 세계에서는 누구를 부르겠다 마음먹으면 상대가 이미 알고 대답합니다(사 65:24). 모든 산천초목이 손뼉을 칩니다.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함으로써 인류가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도 탄식하고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친 아들딸 된 여러분이 마지막에 나타날 때 들에 있는 나무가 손뼉을 치고 땅과 물이 노래를 부릅니다.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롬 8:19-20).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데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으로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살인죄입니다(요일 3:12-15). 이제부터 가정마다 불목(不睦)했던 것 회개하십시오. 자식 미워하고 며느리 미워했던 것 뉘우치십시오.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친딸처럼 아끼십시오. 며느리들은 친정 부모님 이상으로 시아버지,시어머니를 사랑하고 받드십시오. 시어머니 미워하고 빨리 죽기를 바라면 자기가 먼저 병듭니다.


사랑만 있으면 가난해도 만족합니다. 기쁘고 감사합니다. ‘내가 부자 됐으면 큰일 날 뻔 했지. 이 성격, 이 마음에 부자가 됐으면 남을 짓누르고 무시하고 교만했을 거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을 깨달으면 만족합니다. 또 사랑을 깨달으면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습니다. 남을 도와주고 살게 됩니다. 성도는 교회를 사랑하고 담임목사를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지막에 가는 표는 바로 사랑의 표입니다. 믿음도 사랑의 표, 은혜도 사랑의 표입니다. 사랑의 표를 갖지 못하면 그 나라 못갑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여주 연수원은 기도 응답이 빠릅니다. 몸 아픈데도 좋습니다. 일제 시대부터 백금을 캐던 금광입니다. 차돌이 많아서 기를 내보냅니다. 몸이 아픈 분들은 보름, 20일씩 머무르면 벌써 몸이 달라집니다. 저는 여주 연수원을 가족보다 더 사랑합니다. 곳곳이 고쳐진 것을 보면 눈물이 나게 기쁩니다. 지하 240미터, 280미터, 300미터 다섯 곳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앞으로 물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7만 명이 먹어도 떨어지지 않을 물입니다. 물이 살아 있기 때문에 푸르스름한 빛이 납니다. 알칼리 지수가 83이나 나옵니다. 녹슬고 썩지 않도록 수도관과 탱크를 모두 스테인레스와 동파이프로 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평강 성도들을 변치 않는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물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서로 만나고 있는 것,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006년 10월 29일 주일 2부예배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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