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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글쓴이 : 관리자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요한복음 14:8-9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 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8-9)


오늘 본문(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이 심한 갈등으로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는 말씀에 70문도가 이미 예수님과 상종하지 않겠다며 떠나갔고(요 6:66), 그나마 남은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마저 예수님을 팔러 대제사장,장로,유사들에게 가버린 뒤였습니다. 회사에서 직원 하나만 배신하고 나가도 밥맛이 다 떨어지고 살맛이 안 나는 법입니다. 육신의 문제도 이런데 하물며 예수님에게는 영의 문제입니다. 죄 없는 분이 우리 죄를 다 맡아 속죄를 위한 어린 양으로 오셔서 (마 20:28, 고전 5:7, 고후 5:21) 3년 동안 하늘의 비밀을 열 두 제자에게 가르쳐 주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제 사흘 뒤면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한 고통과 모욕을 당하셔야 하는 것을 미리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마음은 송곳과 칼로 후벼대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계십니다. 그런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밥 잘 드시고 차 한 잔 마시며 속 편하게 하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부부가 아니듯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빌 2:5, 고후 13:5). 인류의 죄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심한 통곡 속에 간구와 소원을 올리시는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히 5:7). 예수님같이 불쌍한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근심이 태산같이 쌓여 있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요 14:1)고 하시며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1. 1-3절 “우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내용입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먼저 가서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겠다’는 것입니다.


2. 4-11절 “내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3. 12-15절 “내가 없더라도 내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라. 그러면 내가 실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는 이 말씀을 안 하시다가 이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처참히 죽어 아버지 앞으로 가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4. 16-31절 “보혜사(保惠師) 성령,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中保者), 변호사가 오시니 걱정하지 말라. 늘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로 너와 함께 하고 동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도중 갑자기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립이 뚱딴지같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저희에게 보여주소서” 한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하고 간청하였다” 고 돼 있습니다. 영어성경(NIV)에는 “Lord, show us the Father and that will be enough for us.”로 기록했습니다.


이 질문은 실상 빌립만의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바로 이 질문으로 교회에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냐?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 일요일에는 모처럼 놀러도 가고 가족끼리 보내야지 밤낮 교회 가서 뭐하냐? 100년도 안 되는 인생인데 왜 교회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 네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느냐. 하나님을 보여주면 나도 믿겠다.” 많은 이방인, 불신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 42:3)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 42:10)



일본의 목사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1888-1960)는 자신의 유년 시절 교사였던 로건을 회고하며 “나는 하나님을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로건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의 그림자를 봤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누가 욕해도 오히려 사랑을 베풀고, 남의 잘못을 알아도 모른 척하고. 허튼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호렙산에서 40주야를 떡도 물도 마시지 않고 기도한 뒤 하나님이 직접 깎아주신 돌비에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서는 눈부신 광채가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죽을까봐 수건으로 가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출 34:29-35). 스데반 집사도 복음을 전하다 잡혀 공회 앞에 섰을 때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습니다(행 6:15).


나의 말과 일과 행동과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여 줘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삶 속에서 이웃과 친구와 동창들에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까? (고후 2:14) 여러분의 말에서 예수님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얼굴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복음으로 인해 하늘의 소망이 있고, 성경 말씀을 깨달아 너무 기쁘면 얼굴이 윤택해지고 빛이 납니다. 환해집니다. 그런데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고 하는데 얼굴에 활기가 없고 웃음도 없고 늘 표정이 어둡다면 얼굴로 예수를 증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불만에 차 있고, 만족을 모르고, 남을 칭찬하는 대신 욕하고 험담하고 있다면 말로써 하나님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소처럼 수걱수걱 성실히 일하는데 믿는다는 사람이 말만 앞세우고 입만 놀리고 있다면 일로써 하나님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앉았다 일어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저 사람 조심해야 해. 무서운 사람이야” 한다면 그를 성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밥 한 끼라도 같이 먹고 싶어서 붙잡는 사람이 돼야지, 빨리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된다면 그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 구석구석을 가 봐도 직분 맡은 사람들에게서 향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세상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답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이 하나님입니다(요 1:1). 누가는 말씀의 목격자였고 (눅 1:2). 요한일서에는 “우리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졌다”(요일 1:1)고 했습니다. 말씀을 만나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예수님 믿는다면서 1년 내내 성경을 쇠고랑 채워 감옥에 가둬 놓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감옥에서 꺼내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계 1:3).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듣지도 않고 성경을 읽지도 않으니 하나님을 언제 만나겠습니까. 말씀을 만나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광채가 납니다. 소망이 있고 모든 생활에 자신이 생깁니다. 그래서 형통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욥은 ‘죽어서야 그 나라에서야 하나님을 뵐 수 있겠다’ (욥 19:26) 했었지만 말씀을 만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은혜와 진리, 이 두 가지로 오셨으니(요 1:14) 내가 은혜를 받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받은 것이고, 내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말은 ‘본다’는 단어를 모든 감각에 걸쳐 사용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손으로도 ‘만져본다’고 하고, 냄새도 ‘맡아본다’고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아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뜻입니다.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렸던 헬렌 켈러는 손가락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세계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영적으로 보는 세계는 창조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한한 세계입니다. 영적인 눈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천국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영원(永遠) 속에 하나님은 깊이 잠재돼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469 장(새찬송가 412)을 불러 보십시오. 큰 도움이 됩니다.



매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회가 들어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여 주지 못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남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말을 조심하십시오. 남의 얘기 안 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마 12:36-37).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나를 망하게 하고 내 진로를 가로막고 내 집을 쑥대밭 만든 원수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그러나 사 랑하라고 하십니다. 당신을 비참하게 죽게 만든 빌라도까지도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며 용서해 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정신과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75세, 그의 아들 이삭은 180세, 그의 아들 야곱은 147세까지 살며 각각 믿음과 순종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보여줬습니다. 모세,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을 보여줬습니다. 사도요한은 밧모 섬에서 계시로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줬습니다. 오늘날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줘야 합니다. ‘쉿, 엄마 없다고 해’ 시키는 것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것입니다. 거짓말의 속성은 마귀입니다.(요 8:44) 주위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교회를 다녀? 저 사람이 장로야?’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고 변치 않는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연대 없는 그 날짜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변합니다. 오늘은 “믿음의 형제 됐으니 끝까지 잘합시다.” 해놓고 얼마 안 돼 서로 말도 안 하고 외면하고 인사도 안 하기도 합니 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저 사람 달라졌어.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돼” 소리를 들어야

아버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사 59:2) 세례 요한은 종교 지도자, 바리새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꾸짖었습니다(마 3:8)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려 해도 우리 죄가 막고 있습니다.(렘 5:25) 크건 적건 죄가 있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가족, 친척, 친구, 회사 동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고 싶습니까? 죄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저 사람, 전과는 달라졌어. 교회 열심히 다니고 성경공부 하더니 그전 사람이 아니야. 진실해졌어. 예수를 믿으려면 저 사람같이 믿어야 해” 이런 소문을 내야 하나님을 보여주는 세계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약 2:26)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따릅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며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마 5:16)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너를 사랑함같이 너도 사랑으로 행함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빛난 세마포(細麻布)를 주십니다.(계 19:8)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계 19:7-8) 성도의 옳은 행실은 바로 행함입니다. 억지로가 아닌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1,700번 넘게 읽었습니다. 신구약 66권 가운데 한번도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안 나오는 곳이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에스더서입니다. 1장부터 10장까지 전체에 한 번도 ‘하나님’이 나오지 않습니다. 말이 아닌 행함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준 것입니다. 놀랄 만한 일입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둘이 결혼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 깊이 깨달은 사람,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습니다.(시 121:8) 그에게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마 17:8) 가족과도 ‘오직 예수’, 부부 사이에도 ‘오직 예수’, 자식을 봐도 ‘오직 예수’, 직장에 가도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 여러분, 멋있게 믿고 멋있게 사십시오.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달픕니까. 오직 예수님 믿는 복으로, 말씀으로 위로받으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입니다.(고후 1:3-6)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여러분의 남편, 아내, 자식, 모든 사업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고, 근심하지 말고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눈만 뜨면 누구를 전도할까 생각하고, 앉으면 기도하고, 일어서면 전도하는 영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년 12월 3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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