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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救贖史)의 현장, 이 세상과 오는 세상
 글쓴이 : 관리자
 

구속사(救贖史)의 현장, 이 세상과 오는 세상

요 13:31-14:4, 마 12:32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와서 이렇게 어두운 지옥 같은 사망의 세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구속(救贖)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열심과 사랑으로 실행하고 계십니다. 우주가 창조함을 받을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죄를 멸하고 역사의 새 종을 울릴 때까지가 모두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사의 중심은 구속사(救贖史)이고,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전(主前)과 주후(主後)로 역사의 분기점을 이루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종결됐고, 그 분은 신약의 근거로 모든 역사의 절정과 핵심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했습니다. 우주 만물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면 하나도 지어진 것이 없습니다(요 1:1-5).


구속사의 현장은 이 세상[今世]과 오는 세상[來世]입니다(눅 18:30, 엡 1:21). 이 세상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오는 세상을 믿지 못하고 우습게 알면 큰일 납니다. 성경은 인류가 바라는 영광스런 황금시대의 약속은 이 세상이 아니라 오는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는 세상은 사망과 아픔, 눈물, 괴로움이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곳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이 세상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즉 창세기의 세상입니다(창 1장). 오는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요한계시록의 세상입니다(계 21,22장).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해, 달, 별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지금 우리가 보는 태양의 7배나 밝기 때문입니다(사 30:26, 계 21:23). 결혼식 때 신부가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답습니까. 오는 세상이 바로 그런 세계입니다(계 21:1-2). 창세기의 세상, 즉 실락원(失樂園)은 간교한 사탄 마귀가 승리해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대화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세계를 모르는 소경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세상, 즉 복락원(復樂園)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빼내신 성도들이 승리하고 마귀를 패배시키는 세상입니다(계 17:14). 그 때는 구원 받은 성도들이 만국의 영광을 가지고 열린 예루살렘의 열두 진주문 앞으로 가서 다 통과합니다(계 21:21-27). 그러나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담에 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추방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돌들도 소리지른다고 하셨는데 담이 왜 소리치지 못하겠습니까.


창세기의 세상은 범죄해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사는 세상입니다. 죄인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즉 십자가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교회에서 목사, 장로라고 대접받으려 하지 말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도해야 합니다(딤후 4:1-2). 전도하지 않고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오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얼굴 앞에 나아가 주님과 함께 장막에 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장막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세상은 무섭고 저주 받은 세상이지만 그곳은 저주가 없습니다(계 22:3). 근심, 걱정, 눈물, 사망, 고통이 없습니다. 창세기의 세상은 유한한 세계지만 오는 세상은 영생 불사의 세계입니다. 거기는 밤도 없습니다(계 21:3, 22:5). 이 세상은 밤에 잠자지 않으면 병들지만 그곳에서는 늘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감사합니다. 바다도 없습니다(계 21:1). 바다는 죄악의 불안과 공포를 상징합니다(계 17:1-5, 렘 51:13). 그곳에서는 피곤치 않습니다. 생명나무가 달마 다 열두 과실을 맺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니(계 22:1-2) 사람이 죽을래야 죽을 수 없습니다. 생수가 흘러 나와 모든 생물이 살아납니다(겔 47:12).


이런 세상을 믿으십시오. 성경은 그림의 떡이 아닙니다. 실제 있는 생명의 떡입니다. 그러니 자기 할 일 다 한 뒤 남는 시간에 교회 나오려는 썩어빠진 정신을 버려야 합니다. 첫째가 하나님, 둘째가 부모님, 셋째가 자녀들, 넷째가 나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주일(主日) 제일주의로 사십시오. 절대 주일을 범하면 안 됩니다(사 58:13-14).


하나님은 오는 세상을 일으켜 천지를 바꾸십니다. 하늘이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직전에 믿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홀연히 변화됩니다(요 11:25-26, 고전 15:51-55). 죽을 몸들이 죽지 않음을 입을 때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호령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망을 폐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질 때[헬. 카이로스]가 있습니다(마 19:28). 만유가 회복되는 때[카이로스]인 것입니다(행 3:21). 이 때에는 진동하지 않을 것을 영원히 존재하게 하기 위해 진동할 것들의 대변동이 있습니다(히 12:27). 그러나 진동할 것들이 대변동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우리는 진동치못할 나라를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히 12:28).



‘이제’와 ‘그 때’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이제’는 가변적, 임시적,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리고 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예수님을 통해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됩니다. 지금은 눈에 안 보이던 것이 그때는 제가 여러분을 보고 여러분이 저를 보듯 밝히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주 안에 있는 세계가 이 지구가 없어지기 전에 이뤄집니다. 이 세상은 모두 그림자, 형식에 불과합니다. 오는 세상은 실체입니다(고전 13:10-12). 오는 세상의 때를 만나면 이 세상의 일들, 연약한 어린애 같은 믿음은 다 버려야 합니다. 오는 세상은 바나나가 먹고 싶다 생각하면 이미 입에 와 있는 세계고, 한국에서 미국까지 비행기로 13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순간으로 가는 세계, 시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세계입니다.


‘이제’는 이 세상 속에서 성화(聖化) 과정에 있는 그리스도인, 전투하는 미완성의 지상(地上)교회지만 ‘그때’는 주님의 재림, 즉 영광의 때, 완전한 실물의 때입니다. 육체 밖에서 주님을 보는 세계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닌 영원한 현재, 오늘의 세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위대한 설교를 한 우편 강도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도 먼저, 순간적으로 ‘오늘’ 낙원에 간 것을 보십시오(눅 23:43). 때에 맞는 말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잠 15:23). ‘그때’를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인간들은 나이 60, 70세만 되면 육신이 보잘 것 없어집니다. 하루만 씻지 않으면 악취가 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오는 세상에서는 먹고 마시고 화장실 가고 냄새 나는 일이 없습니다. 화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장한 신부처럼 너무 아름답고 빛이 나는 발광체(發光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간 옷이 해어지지 않고, 신발이 낡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으며, 매일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을 통해서 이런 세상을 미리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교회가 있지만 그 나라에는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시니 아무리 찾아봐도 따로 교회가 없습니다(계 21:22). 오는 세상은 죄가 없는 세계입니다. 알게 모르게 죄지었던 것을 진심으로 다 회개하면 깊은 바다에 던지듯 다 던져서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는 세상을 바라보고 믿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기다 려야 합니다.


욕된 것을 영광으로 승화시키고, 약한 이름을 아름다운 이름으로 승화시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자 같으나 산 자고, 망하는 자 같으나 흥하는 자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고,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번 쓰러져도 또 일어나는 오뚝이 신앙, 생명의 불사조입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어도 한번 죽습니다. 주를 믿고 증거하다 영원한 세계에 가 보십시오. 이 세상뿐이라면 죄짓고 살아도 괜찮겠지만 우리에게는 오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 세계를 바라보며 모든 생활에 감사하고, 주의 몸 된 교회를 어떻게 받들 것인지만 생각하며 살아보십시오. 자녀가 안 되는 법이 없고, 집안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의 아픔이 주의 뜻을 위해 살 때 내일의 기쁨이 되고, 오늘의 절망이 내일의 소망이 됩니다. 오늘의 실패가 기도와 믿음으로 내일의 성공을 가져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이 세상은 유한합니다. 끝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을 보면 그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신학자 존 낙스는 “나의 죄와 죽음을 다 책임지는 분이 예수님이니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나를 보려거든 나처럼 하나님 잘 믿고, 진실하게 살라”고 가족들에게 고백하며 떠났고, 메리 프란세스는 “내가 지금 소유한 기쁨을 너희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점점 내 영혼이 밝아지면서 천국의 세계가 내 앞에 오는 것을 보고 있다. 내가 좋은 곳으로 가니 울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작가 존 번연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당신들을 위해 울라. 나는 예수님 앞에 간다. 천군 천사가 나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했고 헌팅턴 공은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다. 아버지께 가는 길에 있는데 천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며 옷을 입혀달라고 하는 순간 운명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찬송가 226장(저 건너편 강 언덕에)은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의 정서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 세상을 바라보는 위대한 신앙가들은 오는 세상 앞에 정신적으로 가난하지 않고 너무나도 부요(富饒)했습니다. 이제 과거에 지은 죄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더 이상 생각도 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확실히 믿고 의심하지 않는 가운데, 사나 죽으나 주 앞에 갈 때 하나님 말씀을 가슴 속에 품고 주 앞에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박윤식 원로목사 (2013년 4월 28일 미국 올랜도 푸른동산교회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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