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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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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언약의 등불
 글쓴이 : 관리자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만이 아니라 죽은 뒤에도 예루살렘을 비추는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는 이스라엘의 등불입니다. 그가 켜놓은 빛을 끌 자가 없고 그의 신앙은 죽지 않았습니다. (왕상 11:36, 삼하 21:17, 왕상 8:19, 15:4, 대하 21:7, 시 132:17)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대대로, 영원토록 등불이 꺼지지 않는다’(눅 1:33)고 약속하셨고 그 말씀대로 예수님 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 1:1).

하나님께서 ‘악의 종자’라고 부르신 블레셋은 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다윗 왕 통치 말기에도 예고 없이 침략해 많은 사람을 살육했습니다. 노쇠해진 다윗만 없애면 이스라엘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70세 가까운 다윗은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출전을 감행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응답 받고 나아가는 사람은 이스라엘에 오로지 다윗 왕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충성스런 신복(臣僕)들이 왕에게 간했습니다. “내 주 왕이여, 왕은 이스라엘의 등불입니다. 출전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질까 두렵습니다.”(삼하 21:17) 그는 이스라엘의 갈 길이고 지팡이 같은 지도자였으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평강의 상징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속상하고 괴롭고 모든 일이 막혔다가도 다윗 왕만 보면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파멸, 절망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하들이 피 맺힌 충정의 진언을 올린 것은 그 때문이 었습니다.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출전을 감행했습니다. 나라와 민족,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기 몸같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늙어 이불 안에서도 덜덜 떨며 추워서 잠을 못 이루게 되자 신하들이 몸이 따뜻한 처녀를 골라 다윗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을 자기 몸같이 사랑했던 다윗은 아리따운 처녀가 한 이불 속에 있는데도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계획하고 섭리하신 것이 다 이뤄질 때까지 다윗의 혈통을 통해 역사를 이루시고, 다윗의 가문을 지키겠다고 굳게 각오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과 가정도 하나님의 관심사 속에 들어 있어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억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까지, 만까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언약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망대가 되고 성이 되고 울타리, 피난처, 요새가 되십니다(왕상 11:36, 삼하 21:17, 왕하 8:19, 대하 21:7, 시 132:17).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등불입니다(잠 20:27). 등불은 번영이요, 생명의 약동이며, 우리 갈 길을 환히 비춰주는 안내자, 인도자, 동반자입니다(눅 11장). 그래서 세상 끝날에 성도는 등과 기름을 구비하고 있어야 합니다(마 25장). 하나님의 성령, 은혜의 성령을 받지 못하면 끝 날에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요 14-16장, 암 8:11). 빛이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이고 등불이 없는 동네는 무덤과 같습니다. 교회에는 찬송의 등불, 기도의 등불, 말씀의 등불, 은혜의 등불이 켜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활력이 있고 열정이 있습니다. 빛이 있어야 뜨거운 열(熱)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뜨겁지 않으면 산 송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어 있었던 사데 교회처럼 말입니다(계 3:1).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지만 마음 속에 말씀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히 4:12).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벌거벗은 몸같이 다 드러나게 합니다. 말씀으로 뜨겁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은 교회 나와도 기쁨과 보람이 없습니다. 하루의 삶의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죽은 송장이 무슨 맛을 느끼겠습니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알라”고 하셨습니다(시 34:8). 말씀의 맛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온통 육의 생각에 빠져 있고 눈만 뜨면 세상 생각이니 어떻게 말씀을 맛보겠습니까. 육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5). 교회가 부흥되려면 전도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죽어 있기 때문에 전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생애가 고달프고 가난한 것입니다. 전도하는 가정은 셋방살이로 어렵게 사는 듯해도 분명히 그 전도의 불 때문에 누구를 통해서라도 집안을 일으켜 주십니다. 작은 성냥개비 하나로 큰 불을 붙이듯 집안이 복 받게 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고 바울 사도가 말했습니다(고전 9:16). 등불이 꺼진 곳에는 누가 찾아갔다가도 ‘불이 꺼졌네’ 하며 돌아갑니다. 불 꺼진 곳에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등불이 꺼지면 가문이 파괴되고 소멸됩니다(욥 18:5-6, 잠 13:9, 24:20).

성도의 등불은 하나님의 복음, 즉 성경입니다(잠 6:23). 하나님의 복음과 함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등불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나의 빛, 안내자, 생명입니다. 성경은 전 인류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신 8:2-3, 마 4:4, 시 119:105). 말씀이 사람에게 생명의 빛입니다. 말씀과 함께 살던 욥은 “하나님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취었고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다”(욥 29:3-4)고 고백했습니다.

등불은 어두운 세상에 이정표가 됩니다.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 하신 것처럼 오늘 평강제일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켜 이 나라, 이 민족의 등불이라 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 가정의 등불만 된다 해도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수많은 가정의 등불들이 교회에 모이면 교회가 대낮같이 밝아지고 번영하고 부흥되고 안정을 찾아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등불로 삼으신 다윗의 가문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범죄 때문에 12지파가 두 나라로 쪼개졌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다윗의 등불을 유다 지파를 통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왕상 11:36).

남조 유다의 둘째 왕인 아비얌 때에도 위기였습니다. 사신 우상(邪神 偶像)을 섬기고 백성들에게도 귀신을 섬기게 한 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등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하셨습니다(왕상 15:1-8).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등불 다윗을 생각하셔서 수없이 권면하고 참으시다가 3년 만에 악한 왕 아비얌을 죽게 하셨습니다(왕상 15:3, 대하 13:2).

세 번째 위기는 여호람 왕 때였습니다(왕하 8:17-19, 대하 21:5-7).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아합 왕의 딸을 데려와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면서 하나님의 종들을 쳐 죽이고 우상을 수입해 집집마다 들여 놓았습니다. 결국 8년 만에 하나님이 죽게 하셨습니다. 사람이었다면 8개월도 참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때는 이미 다윗 사후 100년도넘은 때입니다. 사람은 2-3년만 지나도 죽은 사람을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의 등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나쁜 후손도 있었지만 그 씨를 통해서 다시 회개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등불로 인정하시면 자녀 가운데 악행을 하는 자녀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지 않고 여러분이 말씀 사모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말씀을 뜻과 변화의 삶을 위해 기도했던 것을 보시면서 언약을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가족까지 용서해 주시고 역사하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 받은 언약의 백성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천상천하에 보배로운 백성, 선택된 백성, 성별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위해서 한없이 고생하신 결과입니다. 아들딸이 아무리 밉고 공부못 하고 못된 짓을 한다 하더라도 욕하고 미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등불이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랑하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등불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의 등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이 잘못된다고 다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다 잘해서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했다고 해서 교회가 깨지고 없어지는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교회에 빛이, 언약의 등불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10만 명이 다 어둠에 속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언약의 등불 하나만 있다면 그 하나를 통해서 교회가 다시 부흥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구역 식구가 다 죽어 있더라도 한 사람만 살아 있으면 죽어 있던 구역 식구들까지 다 살아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급한 마음으로 속단하지 마십시오. “에이, 우리 구역은 틀렸어” 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여러분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등불 되는 많은 영혼들을 전도해 교회에 데려와서 언약의 등불을 만드는 신령한 등불의 공장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까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4천만 동포 가운데 한 등불이 있었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등불은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등불, 경건한 자손들입니다.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백성들입니다. 나라가 악에 빠지기도 하고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오늘날까지 이렇게 튼튼하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등불이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칠흑(漆黑)같은 밤에도 민족을 살리는 등대였던 다윗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다 환하게 빛의 혜택을 보고 살았듯이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강의 교회들 하나 하나가 언약의 등불이 되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그 가정을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높이 올리십니다. 악인은 소멸돼 등불이 꺼지지만 언약된 백성의 등불은 번쩍거리는 금면류관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깨닫지 못해 캄캄하니 하나님께서 “내 말이 불방망이 같지 않느냐”(렘 23:29) 하셨습니다. 빛이 없는 방망이로는 내리쳐도 소리만 들리지 캄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방망이로 치면 환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 같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받아서 가는 곳 마다 환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뭘 해도 되는 일이 없는 어둠의 생활이었지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진정으로 사모하고 받았으니 내 가정과 친구, 사업에 빛이 되는 놀라우신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살피라’고 하셨습니다(눅 11:35). 내 속이 어둡다는 것은 말씀을 받지 못해 말씀의 등불이 없고 성령의 기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에게도 죄가 있었습니다. 충신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우리야를 죽였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질타하셨습니까. 그때 다윗은 눈물로 이불이 다 젖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회개했습니다. 왕으로 40년 통치하는 동안 그 한 번 외에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정직하고 공의로우며 성실하고 진실한지 다 살피시고, 그의 마음과 생활, 일거수 일투족, 하루의 일과를 다 조사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무릎을 치실 정도로 ‘다윗이 정말 진실하게 사는구나’ 하고 인정하신 것입니다(왕상 15:5). 그래서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밝은 등불이 된 것입니다.

그 등불을 지키기 위해서 아비새를 비롯한 충성스런 용사들은 자기 생명을 걸었습니다. 눈물겨운 충성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아비새는 이스비브놉을 죽였고, 십브개는 삽을, 엘하난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요나단은 매 손과 발에 여섯 가락이 있는 장대한 자를 죽였습니다. 하루는 다윗 왕이 목이 타 괴로워하자 세 용사가 적진으로 목숨을 걸고 가서 물을 떠다가 다윗 왕에게 바쳤습니다. 다윗 왕이 목이 메어서 마시지 못 했습니다. 물이 아니라 세 용사의 생명의 피라는 것입니다. 다윗 왕과 신복들은 떨어지려고 해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마음도, 생각도 하나였습니다. 다윗 왕이 늙어 백발이 된 뒤에도 다윗 왕이 건강해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신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다윗 왕과 호흡과 숨결을 같이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윗 왕의 그림자같이 다윗 왕을 모시고 살겠다며 마음과 행동을 같이 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다윗 왕과 신하들이 한 몸같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잘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충신들은 왜 다윗을 등불이라고 믿었을까요. 하나님과의 언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수천 만만의 사람 중에 오직 하나님의 등불은 다윗이고, 그래서 자신이 다윗을 믿고 모시고 충성하면 하나님의 등불이 내게도 점화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쁘신 작정과 계획에 따라 다윗이 왕이 된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스스로를 높이고 앞장서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자마자 너무나 기쁘시고 가슴이 뛰어서 ‘너를 통해 내 원하는 것을 다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삼상 13:14, 행 13:22).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삼상 16:7). 우리 평강의 교회와 성도들도 말씀을 받되 ‘나의 생명, 등불이요, 말씀이 나의 하나님이라’ 하며 믿고 말씀을 모시고 살 때 절대 망하지 않고, 지금은 형편이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개인과 가정,직장과 사업, 나라와 민족에 번영의 축복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핍박과 환난을 받는다고 알려주셨는데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내 생명보다 복음이 나의 생명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는 복음의 폭탄을 안고 죄악이 가득한 곳에서 터져서 자신도 죽고 죄악도 파멸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많은 의의 씨가 번식되게 한 것입니다. 70세가 넘도록 여자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바늘과 실을 가지고 다니며 장막을 꿰매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셋방을 얻어 거기서 밥을 먹이면서 말씀을 증거하고, 마지막에는 칼에 목이 달아나 그 목이 떨어지면서 세 번 튄 곳에서 샘물이 솟아나왔습니다. 그 물로 나중에 성도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눈물 없이는 보고 듣지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각자 자기 집안을 볼 때 이렇다 하고 내세울 것이 없고 인물도 나지 않았고 제대로 공부도 못했고 힘 있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인간의 생각을 다 버리십시오. 오늘 주시는 말씀을 간직하고 가면 캄캄하던 집안에 빛이 비치고, 인물이 나고, 자손만대에 예수님 이름으로 복 받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언약의 등불이 집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9년 1월 28일 수요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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